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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생명논쟁

박영수 변호사(법무법인 강남)

최근 들어 의술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생명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웰 다잉(Well-dying) 차원에서 안락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 이와 취지는 다르지만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사형제도 폐지 주장도 대두되었다.

또한 논의조차 금기시 되어온 자살 문제에 대해 합리성과 도덕성 차원에서 허용될 수 있다는 견해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달 31일 국가생명윤리심의회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권고안'을 제시하여, 존엄사 법제화의 길이 마련되었다.

1997년 존엄사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보라매병원사건'을 담당했던 필자로서는 존엄사의 도입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운영과 관련해 두 가지 문제를 짚어 보고자 한다.

첫째, 웰 다잉 차원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선택에 관한 문제이다.

정부의 법제화 취지가 '연간 100만명 이상이 겪고 있는 경제적·심적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지만, 그 고통의 실체가 무엇이고, 고통을 받는 주체가 환자 본인인지 가족인지 분명치 않다.

또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받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도 그렇다. 권고안에 제시된 '사전의향서작성'이나 가족 등에 의한 의사의 추정제도는 현실적으로 본인의 진정한 의사를 담보하기에는 부족하고, 특히 가족 공동체의 성격이 강한 우리나라의 경우 본인보다 가족의 고통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소지가 오히려 많을 수도 있다.

둘째, 의료비 지출에 따른 경제적 동기의 문제다.

한 개인의 경우 평생 의료비 중 25%가 죽기 마지막 1년, 그리고 20%가 사망 직전에 쓰인다고 한다.

실제로 소수의 상위 소득층 이외에 연명치료를 위한 의료비 지출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생명나눔 인식도조사'(2011.3~12월)에서도 생명 연장치료의 중지 결정 이유로 경제적인 부담이 60.2%를 차지하고 있다.

일찍이 존엄사를 허용해 온 네덜란드 등 의료복지가 완비된 서구의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보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존엄사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남용과 오류의 가능성이 상존하고, 이는 우리 사회에 생명 경시 풍조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그 도입과 운영은 극히 신중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존엄사의 법제화보다는 종전처럼 개별 사안에 따라 법원이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사 입법을 하더라도 법에는 존엄사를 인정하는 선언적 규정과 절차를 두고 최종적인 판단은 법원에 맡겨야 한다.

이와 함께 연명치료가 문제되는 중환자에 대한 의료지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인간다운 삶'의 차원에서 고통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존엄사 제도가 경제적 어려움이나 환자의 뜻에 반하여 생명의 박탈이라는 새로운 불법을 야기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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