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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법정Ⅰ

강신섭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대표)

법정은 법관이 재판하고 당사자가 재판을 받는 곳이다. 법관이 재판을 잘 하고 당사자가 이를 수긍하면, 법정은 세상의 분열과 갈등이 치유되는 아름다운 곳이 된다. 그런데 세상이치가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복잡하다. 법정에는 당사자들 사이의 갈등이 있지만, 재판을 하는 법관과 재판을 받는 당사자 사이에도 갈등이 있다. 법관은 밤늦게 야근을 하고 주말을 희생하며 기록을 검토하고 심리를 하며 결론을 내리는데, 왜 당사자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평범한 의문에 대하여 과학적 분석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재판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에 속하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기에 법관들은 사제들이 제사를 모시는 것과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재판을 한다. 재판기일을 앞두고 음주도 삼가고 입정하기 전에 목청도 부드럽게 가다듬어 본다. 종교를 가진 법관은 자신의 재판이 신의 뜻에 맞게 이루어지고 당사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고, 이성을 믿는 법관은 자신의 재판이 가장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궁리하고 현인들의 가르침을 공부한다. 법정에서 때로 과민하게 까다로운 당사자를 만나도, 장황하고 요령부득한 준비서면을 읽을 때에도, 재판당일 법정에서 준비서면을 제출하는 게으른 변호사를 만나도, 사실을 일부러 모호하게 진술하는 증인의 증언을 들을 때에도, 중언부언하는 변호인의 변론이라는 이름의 장광설을 들을 때에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조정안을 거부하는 미운 대리인을 만나도, 어설픈 전문지식을 자랑하는 젊은 변호사를 만나도, 법관이라는 성스러운 이름으로 모두 인내하고 참아 낸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결론을 내리는데, 왜 당사자들은 수긍하지 못할까.

노인은 종교를 믿지 않고 법원으로 간다. 기록과 법령집 사이에 법이 있으리라고 믿고 지팡이를 끌고 법원의 긴 회랑을 헤멘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법원은 하나의 건물이라고, 주차장에는 자동차들이 즐비한 호텔과 같은 커다란 건물이라고 (김광규의 시, '법원'에서 일부 발췌). 법정에 구원이 있으리라고 믿고 법정을 달려 왔는데, 판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한다. 저 젊은 판사는 도대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있을까. 세상은 각박하고 비정한데, 법률 책만 읽은 것 같은 저 젊은 판사가 나 같이 없는 사람들의 구차한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법정에도 내 구원은 없는 것 같다. 그저 커다란 공간일 뿐이다. 방청석에 작은 의자가 있고 법대 위에는 커다란 의자가 있고, 그 사이에 나무 울타리 같은 칸막이가 있는 법정은 커다란 공간일 뿐이다.

법관과 노인의 화해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화해는 당사자들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법관과 노인 사이에 먼저 화해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법관이 법대 위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와 노인의 세상을 이해하고, 노인은 법정이 턱없이 구원을 바라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아름다운 화해가 이루어지는 상상을 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