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목요일언

잘 되면 내 탓, 안 되면 이름 탓?

전주혜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얼마 전 오랜만에 아는 분을 만났다. 억울하게 송사에 얽혀 몇 년째 마음고생에 큰 손해까지 보신 분이었다. "잘 지내시죠"라는 말에 50대의 그 분은, 일이 너무 풀리지 않아 작명소에 갔더니 이름을 바꿔보라고 해서 개명을 했다고 했다. 새 이름으로 바꾸었으니 앞으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어린 얼굴을 보면서, 몇 년 전 개명사건을 담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개명사건이 1주일에 200건 정도로 많이 접수되었는데 개명사건을 담당하면서 느꼈던 것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려는 사람만큼이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름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몸이 아파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가정사가 잘 풀리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개명신청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물론, 촌스러운 이름이나 일본식 이름을 좀 더 세련되고 예쁜 이름으로 개명하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기억나는 이름으로는 성이 '심'에 이름이 '부름'으로 '심부름', 성이 '노'에 이름이 '숙자'로 '노숙자'인 경우가 있었고, 창녀, 석녀, 옥녀 같은 이름도 있었다.

개명사건을 담당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너무 쉽게 개명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자신을 상징하는 표상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고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함에도 신청자 중에는 한번 개명하고, 또 개명하려는 재개명자도 있었다. 개명사유를 너무 간단하게 작성한 경우도 있었는데, '허망 단명할 격 모든 일을 능하게 계획은 하나, 머리는 있고 꼬리는 없다. 육친의 덕이 없이 고독하고, 병이 떠나지 아니한다'고만 개명사유를 써낸 신청자가 있었다. 아마 작명소에서 해준 이름풀이를 그대로 쓴 것 아닌가 싶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다 보니 새 이름으로 새 출발하고 싶다는 심정은 이해가 되나, 한편으로 일이 잘 되지 않는 것을 이름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리려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다. '그 동안 최선을 다해왔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렇지 않다면 이름과 더불어 마음가짐도 다잡고 삶의 태도도 바꾸어야만 개명한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꼭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