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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거대한 전환

백강진 판사(서울고등법원)

지난 7월 12일 진주에서 열린 전국 민사법관포럼에 다녀왔다. 전국 각 법원에서 참가한 법관들이 우리 민사재판의 현안에 관하여 열띤 발표와 토론을 하였고, 만찬장에서 진양호의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정담을 나누는 추억을 만든 뜻 깊은 행사였다.

그러나 추억뿐 아니라 포럼에서 언급되었던 우리 민사재판의 과제 역시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 포럼에서 소개된 법원행정처 발간 '민사재판 리포트 2013'에 따르면 일부 변호사들은 우리 1심 민사재판의 문제점으로 '지나치게' 신속한 재판의 진행을 지적하였다고 한다.
어느 나라든 민사재판의 개혁 대상은 주로 비효율성이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재판제도의 개혁을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져 왔고 과거 우리나라의 집중심리나 신 모델, 전자소송의 도입 역시 1차적 목표는 효율성의 추구였다.

그 결과 우리 민사재판의 효율성은 이미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지만, 이면의 그림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지난달 대만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 참가하여 우리나라의 민사재판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발표 후 대만의 한 교수가 법원은 편의점과 다르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재판의 신속성과 경제성 측면만이 너무 강조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민사소송법 제1조 제1항은 '법원은 소송절차가 공정하고 신속하며 경제적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민사소송의 이념을 병렬적으로 선언하고 있지만, 소송의 신속과 경제를 위해 '공정'이라는 가치를 희생하여야 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소송이 30년 넘게 걸린다는 등 체송지폐(滯訟之弊)에 관한 기재가 있고, 조선시대 수령들 사이에서 적체된 사건을 빨리 해결하는 것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실적 지상주의가 팽배하였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이를 비판하면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소송 사건을 '뿌리를 남겨둔 채 베어낸 풀'에 비유했다. 물 흐르듯이 송사를 처리하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지만 위험한 것이고, 분쟁을 줄이려면 천천히 처리하더라도 송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대법원 판결까지 거친 사건, 조정이나 화해로 마무리된 사건임에도 분쟁의 실체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경우가 발견되는 우리 민사재판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지적이다.

칼 폴라니는 20세기 중반 명저 '거대한 전환(great transformation)'에서 효율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달성하는 자율적 시장경제란 신화에 불과한 것이 되었고 점차 '사회'와 그 속의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우리의 민사재판 역시 최근 법조 전반을 비롯한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재판의 모습이나 효율성 위주의 지표뿐 아니라 해당 분쟁의 사회적 의미나 재판의 참여자인 인간에 대하여도 많은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공정하고 종국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핵심적 사회적 자본으로 성장하여야 할 중요한 도전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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