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법조인과 역사인식

이남철 법무사(서울중앙지법 외부회생위원)

최근 일본인 관련 판결이 2개 나왔다. 하나는 일본 기업이 1940년대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인데, 서울고등법원에서 7월 10일 여운택(90)씨 등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원고에게 각 1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이유는 '오사카 제철소 등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임금도 제대로 못받고 고된 노역에 시달렸다'는 사실인정과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윤봉길 의사 순국기념비에 이른바 '말뚝 테러'를 한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鈴木信行, 48)씨에게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인데, 서울중앙지법에서 같은 10일 윤봉길 의사의 조카인 윤주씨가 스즈키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유는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에 있는 윤 의사의 순국기념비 옆에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다"라고 적힌 나무 말뚝을 박고, 자신의 블로그에 윤 의사를 비하하는 글을 올린 것은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자 후손에 대한 정신적 피해를 준 것'이라는 것이다.

위 2개의 판결은 역사인식의 문제와 영토문제, 외교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판결로서 비록 민사소송사건이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향후 확정과 집행여부에 국민의 관심을 많이 받는 판결이다.

에드워드 카(E. H. Carr, 1892 ~ 1982)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는 역사를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랑케(Leopold von Ranke, 1795 ~ 1886)가 말하는 객관적인 역사서술 방식이요, 두 번째는 콜링우드(Robin George Collingwood, 1889 ~ 1943)의 주관적인 역사서술 방식이다. 전자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서술하는 실증주의 방식을 말하고, 후자는 역사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덧붙이는 주관주의 해석론적 방식을 말한다. 저자인 카는 양쪽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사실을 소유하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고,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의미가 없다.' 따라서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한다.

역사공부나 역사인식도 마찬가지이다. 있는 그대로에 집착하면 암기과목에 불과하게 되는 문제가 있고, 주관적 해석에 치우치면 인식의 차이라는 이유로 과거를 부정하거나 과거행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데 악용된다. 나열된 사실에서 의미있는 핵심을 파악해야 하는 법조인에게 있어서 역사인식은 실정법에 대한 지식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고시가에서 한때 국사과목이 소홀하게 취급된 적이 있다. 최근에는 그에 대한 반성으로 사법시험을 비롯하여 행정고시나 각종 공무원시험에 국사를 시험과목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량의 법조인을 양성하는 각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역사과목을 더욱 소중히 다룰 것이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