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대머리 이론-법과 언어

김대휘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주로 법정 변론술을 가르친 그리스의 소피스트는 '대머리는 없다'고 주장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하여 머리숱이 많은 사람을 옆에 두고 머리털을 하나씩 뽑으면서 '이 사람이 대머리냐'고 물었는데, 사람들은 머리털이 다 뽑힐 때까지 그 사람이 대머리라는 대답을 하지 못하였고, 결국 소피스트는 '대머리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어디서부터 '대머리'의 개념에 해당하는가를 확정하는 것이 법률가의 작업이고, 법률가는 애매한 것을 정하는 남자 또는 여자라는 의미에서 소위 '애정남, 애정녀'라는 재미있는 비유는 일리가 있다. 길가에 모랫더미를 쌓아놓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경우, 모래 몇 알이 모인 것부터 모랫더미가 되는지 확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법해석에서 문언의 핵심적 의미, 통상적 의미, 가능한 의미와 같은 의미 범주의 폭이나 정도를 정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은 법언어의 모호성과 경계 설정의 어려움 때문이다. 여기서 문언의 핵심적 의미는 분석법학자인 하트(Hart)가 말하는 '개념의 핵'이고, 문언의 가능한 의미는 '개념의 주변'이다. 하트가 제시한 예로는, 공원 내에 '탈 것'의 출입을 금지하는 경우 롤러스케이트는 개념의 주변에 해당되고, 공원에 전시된 차량은 개념의 핵에 해당하지만 그 입법목적과 텍스트를 고려하면 개념의 핵인 차량은 오히려 출입이 허용된다. 로마시대에 성문 안으로 '네발 달린 짐승'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을 때 두발 달린 타조가 들어올 수 있는지 문제가 되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개념은 법현실에 따라 변천하기도 하고, 특히 가치평가적 언어, 예컨대 '부당한', '현저한' 또는 '부정한', '음란'이나 '선량한 풍속'과 같은 규범적 개념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명확하고 그 시대의 도덕적 가치판단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법률용어는 모호성뿐만 아니라 다양성, 가변성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트는 법질서의 개방적 구조(open texture of law)를 말하고 이는 언어 본질상의 한계라고 한다. 법원은 원칙적으로 입법의 범위 내에서 규범을 해석하지만, 법률은 불충분하고 불완전하다. 많은 경우 법관은 법률의 범위 내에서 규범 창설적 기능을 수행하고, 이는 현대의 기능적 삼권분립 하에서의 사법의 과제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법관이 '법의 입'에 불과하고 법창조적 기능을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구시대적 삼권분립의 관념이고, 교조적인 법실증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법은 언어로 시작되고 언어로 끝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언어 없이 법과 법률가는 침묵한다!" 법학과 실무의 질(質)은 법언어의 정확성과 법률가의 언어능력에 의하여 결정된다. 전(前) 언어적인 법감정과 법의식도 그것을 표현하고 살아있게 만들려면 언어로 정리되고 구성되어야 한다.

법과 언어의 일정한 연결이 법언어의 질을 결정한다. 입법이나 법적용, 법상담, 법학연구, 교수, 시험 모두 언어로 이루어진다. 언어는 열린 학습과정에 의하여 습득되고, 언어공동체 내에서 사용되고 번역되어 소통에 기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