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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아들을 군에 보낸 뒤

윤배경 변호사(법무법인 율현)

며칠 전 논산육군 훈련소를 다녀왔다. 훈련을 마친 아들놈의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 주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짐을 챙겼다. 찹쌀밥, 불고기, 김치볶음 등 아들이 평소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식이 시작되기 전 연병장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가족들이 스탠드에 서서 아들들을 찾기 위해 발꿈치를 들었다. 우리 내외도 큰 아들을 찾았다. 모든 훈련병들이 같은 베레모에 같은 색상의 군복을 입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런데 그 중 한 군인이 고개를 꺄웃꺄웃 하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들이었다. 엄마 아빠를 보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아내는 "우리 아들 맞다"며 반가와 했다.

간단한 식이 끝나고 계급장을 달아 주려고 연병장을 향했다. 얼굴은 조금 야위었으나 어깨가 굵어진 느낌이었다. 우리는 아들의 왼쪽 가슴에 작대기 하나짜리 계급장을 달아 주었다. 아내가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아들을 안았다. 약 한 달 전 빡빡 밀어 버린 머리에 운동모를 뒤집어 쓰고 동년배들과 대충 줄을 맞추어 손을 흔들며 연병장을 떠나던 때가 엊그제 같았다. 그때도 아내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물론 눈물을 훔치던 사람은 아내만이 아니었다. 그 누구의 어머니로, 누나로, 그리고 연인으로 그녀들은 눈이 빨개지도록 이별을 나누었다. 약 1000여 명의 건장한 장정들을 훈련소에 보내면서 그렇게 비슷한 숫자의 가족들이 아쉬움과 걱정스런 마음을 간직하면서 되돌아 왔다. 아내는 돌아 오는 차 안에서 훈련소 교장님(연대장님)이 "여러분의 귀한 자손들을 안전하게 지키면서 잘 교육을 시키겠다"고 한 약속을 몇 차례고 되새기며 "우리 아들, 괜찮겠지?" 했다. 나 역시 그 되물음에 "안심이 된다"고 말해 주었다. 사실 연대장의 그 한 마디는 우리 모두가 듣고 싶은 말이었던 만큼 안도감을 주었다.

입소한 지 약 2주가 되자 훈련소로부터 소포가 도착했다. 아들놈이 입고 들어 갔던 사복과 소지품이었다. 아내는 상자 속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부쳐진 옷가지와 신발 등을 정리하면서 감정이 복받친 듯 했다.

아들의 옷에서 체취를 맡으며 대성통곡(?)을 했다. 집을 떠난 자식에 대한 모성애는 항상 뜨겁고 언제나 허기진 듯 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난 뒤 갑자기 아내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도 남북관계가 경색된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했다. 나름대로 진보주의라고 자처하던 그녀는 북한의 계속되는 군사적 위협에 생떼를 쓴다고 단정했다. 아주 짧은 시간에 보수주의자로 돌변한 듯 했다. 군내에서 발생한 가혹행위나 성 범죄 이야기를 들으면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저한 법치주의자 같았다.

자기 아들 귀한 줄 밖에 모르던 그녀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기 시작한 모습도 보였다. 길 거리를 가다가도 군복을 입은 청년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짠해져서 한번 더 눈길이 간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우리 가정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닐 것이다. 군대에 자식을 맡긴 모든 아빠와 엄마 그리고 연인들이 함께 느끼는 것임에 틀림 없다. 우리는 "남자는 한 번쯤 군대를 가야 철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철이 드는 것은 단지 20대 청년뿐만이 아니다. 그를 그리워하는 전 가족들이 다 같이 철이 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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