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용기보다 열린 마음과 지식

신봉철 변호사(법무법인 이산)

1211년 봄 49세의 징기스 칸은 케를렌 강 부근 고향에서 족장회의인 쿠릴타이를 열어 자기 민족과 위구르·탕구트 등 동맹민족들이 금에 맞설 수 있다는 믿음을 보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홀로 부근 산에 올라 모자를 벗고 벨트를 푼 다음 무릎을 꿇고 시작도 끝도 없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기 조상들이 금 민족으로부터 받은 고문과 피살 사실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하늘에 고했다. 자기가 금과의 전쟁을 추구했던 것이 아니고 다툼을 시작했던 것이 아님을 설명했다. 복수해야만 하고 전쟁을 피할 수 없는 때가 왔다는 천명을 들을 때까지 낮이 밤으로 3번 바뀌었다. 그 동안 몽골 민족은 모여서 남자·여자·아이들로 나뉘어 금식과 기도를 하며 기다렸다. 넷째 날 동틀 때 그는 산을 내려와 몽골군을 이끌고 남으로 출정했다(잭 웨더포드의 징기스 칸). 이렇게 생긴 용기는 승리의 약속이었다. 그때까지 없었던 대제국이 태동하는 장면이다.

용기는 명분에 대한 신념에서 생긴다. 이익을 좇는 욕심에서 용기는 결코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움만 생긴다. 용기는 사람의 잠재된 능력을 흔들어 깨운다. 역사의 전환은 언제나 용기 있는 행동에서 시작되었다.

1352년 제정된 어떤 잉글랜드 법률은 왕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을 죄로 삼았단다. 생각이 생각에 머물면 타인이 알 수 없겠지만, 결국 드러나지 않는 비밀이란 없는 것처럼, 생각을 생각에 머물게 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무심코 나오는 말과 눈빛 몸짓을 통해 생각은 밖으로 드러난다. 밖에서 보이는 생각을 처벌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싸워 이길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 상대라면 싸울 용기가 있어야 하고,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상대라면 목숨을 버리는 용기, 즉 후세에 용기를 불러일으키려는 순교자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정부정책에 반하는 말을 하려면 고문을 감수할 용기를 내야 하는 때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공적 사안에 관한 토론에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다는 원칙이 세워졌다. 그 비판이 격렬하고 신랄하며 때론 정부와 공무원에 대한 기분 나쁘게 날카로운 공격을 담고 있어도 처벌되지도 배상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자유로운 토론에 불가피한 허위진술도 표현의 자유가 생존할 수 있게 숨 쉴 공간을 가지려면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는 정도까지 왔다.

지금도 공적 사안에 관해 말할 때 용기를 내야 하지만 요구되는 용기의 정도가 훨씬 줄었다. 자기는 절대선이고 상대는 절대악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싸울 용기는 넘칠 것이다. 싸울 용기를 기르려고 일부러 자기를 절대선으로 상대를 절대악으로 자기최면을 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말하려 할 때, 용기보다 넓은 마음이, 용기를 가지려는 노력보다 지식을 더 확장하고 논리를 더 다듬으려는 노력이 더 요구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