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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모내기철 조팝나무 꽃

이남철 법무사(서울중앙지법 외부회생위원)

초파일 연휴라 그런지 여기저기 고속도로의 정체가 심하다. 차창으로 멀리 보이는 산언덕에 조팝나무꽃이 하얗게 피어있고, 들판에는 군데군데 모내기 준비에 일손이 바쁘다. 논에 물을 대고 썰고 못자리를 손보자면 물이 차가워 발이 시려도 논에 들어가야 한다.

옛날 어느 시골에 부지런한 어머니와 게으르고 놀기만 좋아하는 아들 하나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남의 집 김을 매고, 빨래질과 다듬이질을 해주고 쌀과 곡식을 받아오고, 밤이면 호롱불 켜고 삯 바느질을 해서 아들을 키웠다. 힘이 들었으나 아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서당에 보내는 재미로 살았다. 그런데 아들은 개울가에 고기나 잡고 들로 산으로 놀러 다니고 곶감이나 빼먹곤 하였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며 참으며 남부럽지 않게 키워 보려고 고생을 하였다. 그 덕분에 논도 서너 마지기 마련할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 아들은 별 탈 없이 자라서 한 사람 몫은 해낼 만큼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게으름을 피우며 빈둥빈둥 놀기만 하였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늘 걱정이었다. 이러다가 사람 구실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우선 논일은 아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 동안 놀기만 해오던 아들은 모판을 만드는 것, 모내기, 김매는 것을 제대로 하지 않아 가을에 추수를 해 놓고 보니 어머니가 농사지었던 것에 반도 안 되었다. 참다못한 어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엄하게 꾸짖었다. "안되겠다. 이제부터는 무조건 아침 일찍 일어나 들로 나가거라. 내가 처마 끝에 앞치마를 달아 놓을테니, 하얀 앞치마가 달려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집에 들어오면 안된다!" 심하게 혼이 난 아들은 이튿날 곡괭이와 삽을 갖고 들로 나갔다. 나가긴 나갔으나 일하는 시간보다 처마 밑에 달아놓은 하얀 앞치마가 언제 내려가나 살피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어느 날 앞치마가 바람에 날려 떨어지자 그 틈에 신이난 아들은 놀러나갔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보다가 병이 나서 삯바느질도 못하게 되어 "아무래도 내가 올해를 못 넘길 것 같다. 씨뿌릴 때 씨뿌리고, 김매줄 때 김매고, 거둘 때 거두어야 입에 들어올게 있다. 깊이 새겨두어라. 그리고 내가 죽거든 우리 논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묻어다오"하고는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추석이 되어 어머니 차례를 지내야 하는데 차례 지낼 쌀도 없게 되어 얼마 안 남은 좁쌀로 밥을 지어 차례상에 올리고는 하염없이 울었다. 가을을 넘기고 겨울이 지나고 다시 농사철이 되었는데 아들은 모가 어느 정도 자랄 때 쯤 모내기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 아들은 논둑에 앉아 한숨만 쉬다가 멀리 어머니 산소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머니 산소 곁에 하얀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앞치마를 걸어 놓은 것 같았다. 이때부터 모내기를 해야 하는구나 하면서 아들은 놀라서 산소로 가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천이 아니라 무덤주위에 무수히 많은 좁쌀 만한 하얀꽃, 조팝나무꽃이 꽃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저승에 가서도 아들걱정이 되어 하얀 꽃을 피워 일깨워 주는 듯 했다. 그때부터 아들은 어머니 산소에 조팝나무꽃이 하얗게 필 때면 그때를 놓칠세라 모내기를 하여 일등농군이 되었다고 한다. 이향숙님이 쓴 '입말로 알려주는 우리겨레 옛이야기'에 나오는 조팝나무꽃에 얽힌 이야기이다.

농사나 공부나 영업이나, 다 때가 있는데 제때 준비하고 씨뿌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게 된다. 우리 업계도 과거의 제도에 머물 것이 아니라 앞으로 100년을 보고 지금 조팝나무꽃이 핀 때 바로 씨 뿌려야 할 일을 찾아 씨 뿌리고 제때에 가꾸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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