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쉽게 크는 아이는 아무도 없다

신평 교수(경북대 로스쿨)

사월의 신록은 아름답다. 현기증을 유발할 정도로 찬란하다. 겨울바람이 남긴 상처와 대비되는 경이로운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언제나 비루한 모습으로 가라앉아 있고, 그런 점에서 사월을 잔인하다고 말하는지 모른다.

어떤 여성변호사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룬 가장 큰 일 두 개를, 출산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것으로 꼽은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아이가 커 새봄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갖는 흡족한 마음은 가히 하늘 아래 달리 없는 기쁨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내 중학에 들어가게 되고, 또 고등학생이 되어 무자비한 입시전쟁을 치른다. 이것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인생의 분절이 기다린다. 바로 사춘기의 도래이다. 사춘기를 거치며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그래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때 겪는 혼돈은 빛과 어둠을 언제나 마구 섞어버린다.

아이 셋의 몸부림을 힘들게 감당하며 벌써 나이는 육십이 다 되었다. 아이들을 너무 늦게 가진 탓이나 때때로 억울(?)하기도 하다. 내 인생이 제대로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가 뿜어내는 카오스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고2의 황금 같은 시기임에도 집을 나가라고 했다. "막노동을 해서 살더라도 떳떳하게 살아라." 호령하며 돈 한 푼주지 않은 채, 입고 있는 그 모습대로 내쫓았다. 미친 듯 초조해진 내 입술은 하얗게 타들어갔다. 다행히 아이는 얼마간의 날짜가 지나 고개를 숙이고 집에 돌아왔다. 철도 침목을 까는 공사현장에서 노동하며 지냈다는 말을 듣곤, 그래도 애비의 말을 존중해주었구나 생각했다.

이뿐이랴! 잘 알다시피 아이들에게 지금 유행하는 자살병은 끔찍하다. 대구경북지역의 청소년 자살이 특히 주목을 많이 끌고 있다. 아무래도 이곳의 가부장적 문화, 소통이 부족한 인간관계, 교육행정에서의 딱딱한 관료주의의 잔존 등과 연관이 있지 않나 싶다. 여하튼 아이들이 실없이라도 "나 죽어버릴 거야"하고 말하면, 부모 되는 이들은 오금이 저려오며 벌벌 떤다. 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며 이룩한 모든 것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는 운명과 가위바위보를 하는 느낌이다. 게임에서 지면 하나 남김없이 다 포기해야 한다.

지금 아이들은 인간 사이의 틀을 미리 잡아주는 보편적 이념, 가령 유교의 가르침 같은 게 거의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그만큼 타인과 원만하게 되기 어렵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 세상에 서야 하는 아이들은 저마다 혹독한 과정을 거쳐 성숙해간다.

신록처럼 해맑게 웃는 아이들 앞에서 우리는 기뻐한다. 인생의 빛나는 한 토막이다. 그러나 그 빛은 너무나 연약한 것이라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삶의 탁류를 투과해나가기 어렵다. 빛을 넉넉히 받으며 쉽게 크는 아이는 정말 하나도 없다. 그리고 부모는 몇 번씩이나 나락 속으로 비참하게 떨어지며 아이들이 던지는 모든 것을 받아내어야 한다. 그러다가 한 세상 다 가버리니, 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