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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거위에게 묻는다

이남철 법무사(서울중앙지법 외부회생위원)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고 꽃샘바람이 불지만 봄은 봄이요, 남쪽 가지에 꽃들이 만발하니 새들이 지저귄다. 정민 교수(한양대 국문과)가 쓴 명저 '한시 속의 새, 그림속의 새'라는 책에는 우리네 삶 가까이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새들의 이야기로 가득한데, 거위이야기가 졸음을 깨운다.

이솝우화에서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가 있듯이 거위는 오래전부터 가금(家禽)화 되어 집에서 사육되었다고 한다. 주세붕(周世鵬, 1495~1554) 선생은 문집 '의아기(義鵝記, 의리 있는 거위이야기)'를 남겼다. 사연인즉, "1530년 4월, 큰 누님이 가락리 집에서 돌아가셨다. 누님 집에는 한 쌍의 흰 거위가 있었다. 누님이 돌아가시자, 안마당까지 들어와 방문을 바라보며 슬피 울었다. 이 같은 것이 여러 달이었다. 집안 식구들이 이 때문에 더 슬퍼했다. 이듬해 나는 무릉촌의 집으로 이사하면서 쓸쓸히 무료하게 지내던 차에 두 마리를 옮겨두었다. 모두 수컷이었다. 물마시고 모이 쪼을 때는 꼭 함께하며, 서로 득의롭게 화답해 울며, 먹을 것을 보태주고 목마른 것을 구해주며 날마다 더불어 마주하곤 하였다. 10월 보름에 한 마리가 죽었다. 아침에 일어나 살펴보니 남은 한 마리가 죽은 거위를 안고 그 날개를 당기면서 슬피 울고 있었다. 열흘쯤 지나자 아예 목소리를 낼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대저 거위는 미물이다. 그 주인을 그리워하는 것은 충성스럽고 벗을 가엽게 여김은 의로운 듯하다. 어찌 이다지 기이하단 말인가. 내 보건대, 세상에는 친구를 팔아 자신을 내세우는 자가 대부분이다."

한편,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년)선생의 '천아행(天鵝行)'이라는 시(詩)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거위가 물가에 내려 앉았다. 우연히 야인의 손에 잡혔다. 번화한 거리에 보내져서는 불에 익힌 음식을 많이 먹었다. 몸이 뚱뚱해져 날수가 없었다. 그 뒤 문득 먹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병이 난 것으로 생각하여 더욱 먹을 것을 많이 주었다. 그런데도 거위는 입에 대지 않았다. 열흘쯤 지나자 몸이 가벼워져서 허공으로 솟아 멀리 날았다. 호연히 강과 바다에 즐겁게 노니, 그제서야 사람들은 자기를 지킨 지혜를 알게 되었네."

법조계는 선배, 동료, 후배들로 구성된 넓은 의미의 지성인집단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제적, 국내적 어느 측면을 보아도 치열한 경쟁사회로 변했다. 개별 구성원들이 상도를 지키기 힘들 정도의 정글과 같은 생존시장에 내몰려, 도시락 하나에도 낯빛이 바뀌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수요자인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전개될 위험이 크다. 지성(至誠)으로 국민과 더불어 공존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답답하고 마음이 급해 거위에게 묻는다.

"봄철 환절기라 청첩장 못지않게 부고(訃告)도 많이 오는데, 특히 선배, 동료의 부음에는 일손을 놓게 된다. 왜 이렇게 정신이 팔려 사나. 의리 있고 자신을 지킬 줄 아는 거위야! 세속에 있으면서도 갈 곳을 잊지 않고 비상(飛上)을 준비해야 할, 우리들은 어찌할 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