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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언어민주주의

신평 교수(경북대 로스쿨)

여러 해 전 동해안 어느 곳에서 다중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끼리 우연히 만났다. 아름다운 풍광을 바탕으로 시원한 맥주를 마시다,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언어는 무엇일까 하는 논의가 일어났다. 그런데 이구동성으로 내린 결론은 영어였다. 그런 영어가 세계어라니!

영어가 어려운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영국 지배계층의 변화에 따라 몇 가지 계열의 언어가 뒤섞이게 되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드러난 것 외에도 다른 숨겨진 이유가 있다고 본다.

영어를 잘 구사한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긴요한 일은, 레토릭(수사적 표현)의 분방한 구사에 있다. 언제라도 미국의 일류신문에 실린 논설기사를 읽으면,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요령부득이다. 한참을 읽어나가다 아하! 이런 말을 하려고 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영어를 구사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중국이라고 본다. 중국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차이나 데일리(China Daily)'를 읽어보면 실감한다. 가급적 기본적 단어에 한정하여 쓰며, 내용의 정확한 전달에만 역점을 두다보니 읽기가 무척 쉽다.

영미권에서 현란한 레토릭의 구사에 글을 잘 쓴다는 평가를 주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나는 오래 전부터 이는 '와스프(WASP,백인 앵글로 색슨 신교도)로 이루어진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해왔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아시아계는 여기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죠 바이든 부통령이 과거 경쟁자이었던 시절 오바마 상원의원을 향해, "영어발음을 제법 제대로 내는 흑인청년이지"라고 폄하했던 일을 상기해보라.

드워킨 교수가 말한 대로, 민주주의는 논쟁이 작용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논쟁은 그의 말에 따르면, 참여자가 모두 동등한 존엄성에 입각하여 상대에게 인정받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란 정치참여의 평등이라는 원리에 힘입어 모든 사회적 이익과 요구들이 어려움 없이 표출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쪽이 다른 쪽이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레토릭을 구사한다는 것은 그 쪽을 업신여긴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식의 대화나 논쟁을 통해서는 민주주의 자체가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언어를 교환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구현 측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 법학계나 법조계에서는 아직 이 점에 관한 충분한 인식이 자리 잡혀있지 않다. 어려운 법학용어들을 풀어 써나가려는 노력이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쉬운 문장을 쓸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많다. 거꾸로 어떤 사람은 문장력은 있는데, 엉뚱하게 자신의 박식함이나 고매함을 자랑하려는 뻔한 욕망을 숨기지 않은 채 글을 쓴다.

우리가 누구이든 그리고 어떤 지적 배경을 가졌든 우리는 이 사회공동체의 일원이고, 다른 구성원들을 존엄한 인격의 주체로 존중해줘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고, 쉬운 말을 써야 하는 것은 그래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