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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풍림화산(風林火山)

신봉철 변호사(법무법인 이산)

이명복은 8대 조부 인평대군 때 이미 그의 가계가 왕위와 멀어졌으나 왕통의 본류가 소진하는 등 천우신조로 왕위에 올랐다. 선왕들이 오르지 못한 황제의 지위에도 올랐다. 삼전도의 굴욕 이후 200년 이상 청의 신하국이었던 조선은 청이 쇠퇴하면서 이제 나라의 기를 펼 기회를 만났다. 그는 30대 중반이던 1887년 이하영에게 미국으로 가 부산겴光탛원산을 담보로 200만 달러를 빌려 이로써 미국 병사 20만을 데리고 오면, 청을 몰아내고 쉰양강(저장, 장시 북쪽의 양쯔강) 너머까지 통치하기 편하도록 평양으로 천도할 계획을 내비쳤다고 이하영은 회고했단다. 그러나 그 기회는 망국과 망신의 화를 부를 수 있는 위기이기도 했다. 일본인들에 의해 왕비가 살해당했고, 황위에서 쫓겨났으며, 그의 아들이 제국의 통치권을 일본 천황에게 바치는 것을 보아야 했다. 그의 사후 26년이 지나 통치권 없는 왕가는 아예 왕족의 지위마저 잃었다. 그가 가지려던 만주와 중원은 결국 쉰양강 너머 사람 마오쩌둥이 차지했다. 어느 누구에게 기회로 보이는 것은 위기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결과가 만든 동아시아 국경은 지금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동아시아 정치지도는 1960년대 후반 중국의 핵무장을 계기로 중소 관계가 험악해지자 미중 관계가 좋아지는 것으로 변했고, 소련이 사라진 후 지난 20여 년 간 중국은 강해졌고, 한국은 더 성장했으며, 북한은 살아남아 핵무장을 했고, 미국의 재정은 악화됐다.

지난 2월 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했다. 그 3일 후 이명박 대통령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통일 후 미군기지가 북한에 주둔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 한미동맹이 한중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고 미중 간 이해가 상충될 때에는 한국이 평화 유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있다. 정상 간에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북한이 또 다른 소수민족이 되는 것은 중국이 절대 함부로 못하는 일이다. … 중국은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자국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 12일 후 중국의 권위 있는 신문의 부편집인 덩유웬은 파이낸셜 타임즈에 쓴 글에서 "김정일은 2009년 북한을 방문한 빌 클린턴을 만나 워싱턴이 도움의 손을 내밀면 북한은 중국에 대항하는 미국의 가장 강한 요새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고, 평양은 중국을 강제하는 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면서 "중국이 평양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최선의 길은, 북한의 남한과의 통일이 용이하도록 중국이 주도하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을 가져오는 것은 미일한의 전략적 동맹을 약화시키고, 동북아에서 중국에 대한 지정학적 압력을 완화하는 것이며, 대만 문제를 종국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이후 고정되어 있던 한미와 북중의 2개의 동맹 관계 속에 한국과 미국의 귀와 눈을 어지럽히는 말과 행동이 중국과 북한에서 공공연히 혹은 암암리에 속속 나오는 모양이다. 숨겨진 흉악한 의도가 따로 있을 수 있고, 사태가 각자 의도한 바와 전혀 달리 벌어질 수도 있다. 위기임이 분명하고 기회일 수도 있는 이 시기에, 손자가 했고 다케다 신겐이 좋아했다는 말이 절실하다. 그 빠름은 바람과 같고(其疾如風), 그 침착함은 숲과 같으며(其徐如林), 몰아침은 불과 같고(侵掠如火), 흔들리지 않음은 산과 같다(不動如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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