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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입춘등산(立春登山)

이남철 법무사(중앙지법 외부회생위원)

폭설과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으나 절기상 입춘(立春)이다. 골목길가의 목련을 보니 벌써 새 움이 돋아나고 있다. 주말 날씨가 좋아 근처의 야산에 올랐다. 이맘때 산행은 산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오를수록 점점 시야가 트여서 시원하다. 봄철 산행에서 조심할 것은 겨우내 얼면서 부풀어 올랐던 발아래의 땅과 돌들이 일부 녹아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디뎠다가 푹 꺼지면서 자칫 실족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종묵의 '한시마중'이라는 책에는 조선초기의 농서 '금양잡록(衿陽雜錄)'으로 유명한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아들을 위해 지었다는 훈자오설(訓子五說) 중 세 번째 이야기인 '등산설(登山說)'을 소개하고 있다.

중국 노(魯)나라의 어떤 사람에게 삼형제가 있었는데, 갑(甲)은 침착하고 착실한데 다리를 절고, 을(乙)은 호기심이 많고 몸이 건강하고, 병(丙)은 용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평상시에 일을 하면 병이 항상 으뜸이고 을이 다음이었다. 갑은 꼴찌였기에 근실하게 맡은 것을 꾸준히 하였다. 하루는 을과 병이 태산(泰山)의 일관봉(日觀峰)에 누가 먼저 오르는가를 내기를 하였다. 갑도 행장을 준비하니, 을과 병이 "태산이 높아 구름 밖에 있어 건각(健脚)도 어려울 진데 하물며… "라고 비웃었다. 이에 갑이 답하기를 "그저 뒤에서 끝으로만 따라가도 천만다행 아닌가" 하며 함께 갔다.

태산 아래 당도하여 해가 많이 남아 있자, 가장 날랜 병은 태산이 생각보다 높지 않음에 스스로의 힘을 믿고 주위의 계곡을 들락거리면서 늑장을 부렸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는 벌써 어둡고 산짐승이 나타나 부득이 산을 오르지 못하고 포기를 하였다. 을은 중턱까지 올랐지만 호기심에 이봉우리 저봉우리 경치를 즐기다가 그만 날이 저물어 오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어 바위틈에서 자고 아침에 도로 내려왔다. 갑은 다리가 성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곧장 길 하나만을 찾아가면서 비틀거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시간과 힘이 부족할까 염려하여 옆길로 가보거나 먼 곳을 바라볼 여유도 갖지 못하고서 심신을 다하여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자 천하가 한눈에 들어왔다. 일몰의 광경과 별천지의 야경을 감상하고 산마루의 숙소에서 잠을 잔 후 아침에 절기(絶奇)의 일출(日出)을 맞이할 수 있었다.

17세기에 편찬된 이솝우화집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강희맹이 접하지 못했을 텐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의 이치와 지혜는 서로 통하는가 보다. 그의 아들 강구손(姜龜孫, 1450~1505)은 훗날 우의정이 되었다.

2월, 새 정부와 법조계 안팍에서 인사철로 바쁘다. '한시마중'에서는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의 "등산유도, 서행칙불곤, 조족어평온지지칙불질(登山有道, 徐行則不困, 措足於平穩之地則不跌); 산에 오름에도 방도가 있다. 천천히 가면 피곤하지 않고, 평평한 곳에 발을 두면 넘어지지 않는다" 라는 말로 이맘때의 마음가짐을 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