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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스승의 향기

신평 교수(경북대 로스쿨)

꽁꽁 얼어붙은 대기를 뚫고 지난 연말 서울에 일이 있어 갔을 때였다. 지하철에 탔다. 그런데 좌석에 앉아있던 청년이 갑자기 불뚝 일어서며 앉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하여 어색하게 몇 번 사양했으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내게도 드디어 이런 때가 왔구나 하는 낙담에 시달리며, 그래도 고마운 마음은 한량없어 청년의 앞날에 약간의 축복이나마 던지고 싶었다.

얼마 후 1월1일이 되어 은사에게 합동으로 세배를 하는 신년하례식에 참석하러 다시 서울에 왔다. 어느 음식점에서 동문수학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새해의 덕담을 나누다 드디어 김철수 선생님이 도착하셨다. 선생님이 내 옆을 지나쳐서 자리에 앉으시는데 어떤 향기 같은 게 물씬 풍겨왔다. 그런데 그 향기는 내가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인 대학 초년병 시절 맡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아니 그것이리라는 짐작이었을 게다. 둘이 똑같은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을 할 수 있겠는가? 여하튼 여기에 생각이 미쳤을 때, 갑자기 속에서 뜨거운 것이 물컹거리며 올라왔다.

홍안의 시골 소년이 서울에 올라와 사방을 둘러보아도 낯선 일투성이 시절이었다. 세상은 거친 풍랑이었으며,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 겁을 내고 있었다. 그 무렵 선생님은 곧잘 지도반에 속한 우리들을 자택에 초대하시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과 늘 어긋나는 못난 제자였다. 한번은 따끔한 꾸중을 하셨다. "너는 왜 그처럼 생각이 많니?" 그 질책에는 어리석은 제자에 대한 스승의 짙은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그랬다. 나는 법학공부를 하기 싫어하며 늘 엇길로 걸어가려는 철부지 제자였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채 뭐 하나 잘 하는 일 없이, 더욱이 지방의 가난한 집안 자식이었다.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가 되지 않고서는 법서를 들 수 없었던 나는 지독한 법학혐오주의자였다. 사법시험에 거푸 고배를 마시고 난 후 눈앞에 보이는 것은 절망의 노란 하늘뿐이었다. 그런 나를 선생님은 매번 격려하며 거두어주셨다. 대학원을 다니던 중 공채로 조교를 뽑는 제도가 처음 시행되었는데, 용케 합격했다. 꿈같은 조교생활이었다.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과 캠퍼스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일은 무엇과도 비견하기 어려운 축복이었다. 선생님의 베푸심은 그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일일이 적기가 어렵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할 때 참 기이한 일은, 거의 고마운 마음 없이 그냥 이를 대수롭잖은 듯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아,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누가 처음 말했던가! 자식은 결코 부모의 사랑을 다 재지 못한 채 부모를 떠나보내는 것이니,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떠꺼머리 청년이 이제 서리를 가득 머리에 이고, 젊었던 시절을 돌아본다. 나이는 제법 먹었으되 겨우 스승의 옥체에서 나는 향기를 우연히 다시 맡으며, 비로소 베풀어주신 그 한량없는 사랑을 조금 느낀다. 속에서 올라오는 슬픔은 어느 새 눈가로 번져 축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