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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사면권남용으로 훼손될 법치주의

하태훈 교수(고려대 로스쿨)

설은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이다. 그래서 설 명절을 앞둔 우리는 설렘 속에 설을 맞는다. 나이가 들면서 설날에 대한 감흥이 점차 무뎌져 가는데 올해는 아이들처럼 설렘 속에서 설날이 오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많은 모양이다. 설빔과 세뱃돈을 기대하는 '왕의 남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면서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부했던 왕의 이름에 먹칠을 해놓고도 주군의 은전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줄줄이 상소를 포기한다고 하니 왕과의 교감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들의 기대를 채워줄까 걱정이다. 교도소에서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 내복과 영치금에 그치지 않고 사면의 은사(恩赦)를 베풀까 두렵다. 국민대통합이라는 명분 속에 특사명단에 친구와 친인척, 그리고 측근을 슬며시 끼워넣지나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그렇게 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무너뜨린 벼랑 끝 법치주의가 추락하고 말 것이다. 사법부의 판결을 무시하고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임기 내 마지막 은사를 베푼다면 제왕적 권력으로 삼권분립의 이념은 훼손될 것이다. 비리정치인이나 부패공무원은 처벌하기도 어렵고 처벌한다고 해도 일반인보다 형량이 가벼운데, 쉽게 사면·복권된다면 국민들은 법의 형평성과 공정정을 의심하게 된다. 그들의 비리는 정권 말기에 대통령의 힘이 좀 빠지자 겨우 검찰이 움직여 기소되고 유죄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대통령의 자평을 비웃듯 친인척·측근 비리가 속속 터져 나오자 대국민 사과를 했었다. 국민 앞에 숙였던 머리를 들자마자 그들에게 사면의 은전을 베푼다면 사과의 진정성은 없던 것이 된다. 2009년 라디오 연설에서 "제 임기 중에 일어난 사회지도층의 권력형 부정과 불법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국민 앞에 약속했었다. 그 약속이 국민 가슴 속에 와닿기도 전에 거둬들이는 꼴이 된다.

특사의 이유로 국민대통합을 내세우지만 통합은커녕 분열만 부추길 것이다. 사면복권의 대상이 주로 권력형 부정부패 사범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대통령의 사적 감정이 개입되었을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법치국가에서 은사는 법과 사법을 뛰어넘는 것이어서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도 항상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면은 입법의 오류나 법원의 사실인정, 법해석 및 양형 상 나타나게 된, 다른 방법으로는 더 이상 시정할 수 없는 오류를 제거하기 위한 장치이다. 사면은 법과 판결의 효력을 교정해 주는 기능을 갖는다. 소위 양심수나 확신범을 처벌함으로서 발생한 공동체내의 사회적 갈등을 해소시켜 주는 기능도 한다. 그런 경우에 제한적으로 사면권이 행사되어야 법치국가성이 훼손되지 않고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면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그래야 대통령의 은사는 법 밖의 세계에서 법의 영역 속으로 비쳐 들어와 법의 세계의 추운 암흑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한줄기 빛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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