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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장학금을 주는 나무

이남철 법무사(서울중앙지법 외부회생위원)

대한(大寒)이 놀러왔다가 울고 간다는 소한(小寒)이다. 수십년만의 혹한에 동물들은 동면에 들어서 겨울을 나는데, 나무들은 가을에 열매와 땔감을 우리에게 주고는 북풍한설을 맞으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같이 눈이 많이 오는 해는 설해목(雪害木)이 되어 상처를 입기도 한다. 설해목 중에 나무학자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특강'이라는 책에 소개되는 나무가 있다.

경북 예천 천향리의 석송령(石松靈, 3750-00248)이라는 나무다. 600년쯤 전에 근방의 풍기 지방에서 큰 물이 났을 때, 뿌리째 뽑혀 냇물에 휩쓸려 떠내려 오던 어린나무를 마침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불쌍히 여겨 건져내 냇가 옆에 고이 심어 주었다고 한다. 사람에 의해 생명을 보전하게 된 소나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동네어귀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아내고 액운을 몰아내는 마을의 수호목이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석송령에 당산제를 지내면서 '나무는 사람을, 사람은 나무를' 서로 보호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이 마을에 '이수목'이라는 노인은 남부럽지 않은 부자로 살고 있었는데, 뒤를 이을 자식이 없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름에 잠겨있던 1927년 8월 어느 날, 노인은 당산제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잤는데 "걱정하지 마라"라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펴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아 그래! 내가 가진 재산을 마을의 수호신인 이 당산나무에게 물려주면 되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군청에 찾아가 자신의 전 재산인 땅 2000평의 소유권을 석송령에게 넘기고 토지 대장에 등재하였다. 재산을 갖게 된 석송령은 2012년에 4만2530원의 재산세도 납부하였으며, 자기 앞으로 된 예금통장에 약 3000만원의 잔고가 있어서, 그 중 일부는 대학에 들어간 마을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고 한다.

석송령과 마찬가지로 장학금을 주는 나무로서 황목근(黃木根, 3750-00735)이 있다. 석송령은 소나무인데 황목근은 팽나무이다. 같은 예천에 있는데 기차역 '용궁역' 근처 금원마을에 있다. 성미(誠米, 밥지을 때 한 공기씩 따로 모아두는 쌀)로 이루어진 마을 공동재산을 일제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사람들이 황목근 앞으로 재산등기를 한 것이다. 황목근은 한해 30만원씩 이 마을 출신의 중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민법에서 자연인과 법인을 제외하고는 법인격이 없어서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없다(비법인 사단 재단은 논외). 그런데 나무가 고유번호를 부여받아 재산권에 대하여 등기(등록)를 하고 장학금까지 주고 있다니, 법을 너머 옛 사람들의 지혜가 새삼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새해가 밝았다. 연말에 외쳤던 요란한 구호들을 뒤로하고, 이제 법조계에서도 장학금을 주는 나무와 같이 이웃 사람들의 마음이 얼어 있지나 않은지 살펴서 사랑과 상생의 실천이 펼쳐지는 한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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