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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말할 자유와 말의 해악

신봉철 변호사(법무법인 이산)

"언어는 존재 진실의 집"이라고 하이데거는 말했다. 성 요한은 "태초에 말이 있었고, 그 말이 곧 신이었다"고 말했다(요 1:1). 재판은 소장의 말에서 시작해 판결의 말에서 끝난다. 소장에서 판결로 가는 싸움터 위에 오직 말만 있다. 말이 총이고 칼이며 방패다. 쟁점과 진실을 드러내는 빛도 말이고, 쟁점과 진실을 가리는 어둠도 말이다. 뱀의 다리를 본 사람은 없지만 사족(蛇足)이라는 말은 있고, 사족 달린 말은 거리에 가득할 뿐만 아니라 준비서면에도 무수히 많고 심지어 판결서에도 많다.

말은 사실과 의견으로 구분되지만,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기는 어렵고 사실과 의견을 나름 구분해 말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래서 말에는 통상 사실과 의견이 분리할 수 없게 섞여있다. 명예훼손 소송에서 법관이 사실과 의견을 가르는 것은 의사가 유착된 환부와 생살을 칼로 가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거리에, 인터넷에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 난무하지만 처벌은 거의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로써 거짓 평판을 깨는 것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것이 한국 법이다. 현실에서 명예훼손법은 사실의 진위를 불문하고 사람을 가려 자의적으로 처벌하는 인치의 영역처럼 되어버렸다. 법정에서 사실의 진위는 유무죄가 아니라 처벌의 정도를 결정하는 기준일 뿐이다.

인종·종교·장애·성별·동성애·출신지 등을 기준으로 약자에게 위협적이거나 모욕적이어서 그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말을 증오의 말(hate speech)이라 부른다. 유럽 여러 나라들은 특정 부류의 증오의 말을 하는 것을, 그것이 의견이라고 하더라도, 법으로 금지해 벌하고 있다. 증오의 말이 동기가 된 폭행·상해·살인의 결과를 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폭행·상해·살인을 미리 막으려는 법이다. 증오의 말은, 그 말을 하게 한 원인과 그 말이 실제 초래한 결과를 보지 않고, 폭행·상해·살인에 이를 위험이 매우 높고 그 결과에 이르는 시간이 휘발유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즉각적이어서 그 말의 잠재효과가 핑계 댈 데 없는 해악이라고 평가하여, 말할 자유에도 불구하고, 이를 범주화해서 벌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 것이다.

대선 후보들의 말을 들어보면, 과거를 말할 때, 사실은 거의 없이 편협하고 증오에 찬 상대방 평가가 가득하고, 미래를 말할 때, 지킬 의사나 능력 없는 약속 혹은 검증 불가능하게 불투명한 약속이 거의 전부다. 비전을 말하지 않거나 말한 비전은 모호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대선 후보들의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는 묻는 말에 대답 없이 곳곳에서 증오에 찬 말을 쏟아냈다. 이 정도면 아예 토론이 아니다. 상대방 인격 존중 없이, 토론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극소수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부채질해서 대다수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으려는 포퓰리즘이다. 거리의 선동이 토론장에 잘못 들어왔다.

말에 잘못이 없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다. 사람은 하늘·땅·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길들일 수 있지만 혀를 길들일 수는 없다. 혀는 지배되지 않는 악이다. 부모가 품 안의 자식과 사랑으로 시선을 맞추며 말을 붙이고, 자식은 불현듯 부모의 말을 그대로 따라한다. 공적 인물들부터, 사실을 토대로 의견을 말하고 말에 증오를 담지 말아야 한다. "지식 없는 말로 사리를 어둡게 하는 너는 누구냐?"(욥 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