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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20) 강산여화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추사 김정희란 분은 연구하면 할수록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그 중 하나가 글씨를 가르쳐준 사람에 대한 것이다. 대부분 조금만 가르쳐줘도 매우 생색을 내는 요즘과 그 예전에는 전혀 다르기도 하였겠지만 추사라는 분은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는 그 시퍼렇던 계급사회에서도 계급에 전혀 관계치 않고 상민이거나 중인이거나 또는 나이가 당신보다 많아도 배우겠다면 항상 문을 열어놓았던 분이다.



당신보다 나이가 많은 분에게는 제자라는 표현은 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다 알게 된다. 그런 면에서 당시 평양에서 글씨로 이름을 날린 조광진(曺匡振: 1772-1840)은 추사를 만나면서 그 글씨의 품격이 크게 달라졌다.

추사와 조광진이 언제 서로 알게 되었는지는 미상이나, 추사의 부친인 김노경(金魯敬: 1766-1837)이 평양감사로 가 있을 때인 1828년(추사나이 43세)쯤 알게 된 것 같다. 조광진은 자세한 행적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자는 정보(正甫)이고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더듬어 스스로 눌인(訥人)이라고 호를 삼았다고 한다. 집안이 별 볼 일 없었으며 너무 가난하여 어려서는 떠돌이 생활을 하며 글씨를 배운 듯하다. 처음에는 이광사의 글씨첩을 가지고 배우다가 나중에는 안진경의 글씨를 배웠는지, 추사를 만날 즈음인 이때에는 안진경의 서체를 터득하여 평양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추사를 만난 후에는 추사의 충고를 받아들여 한나라 예서(隸書)에 정진하여 나름의 독창적인 일가의 서풍(書風)를 이루었다. 또한 지두서(指頭書: 손가락으로 쓴 글씨)로도 이름이 났다. 여기에 소개하는 강산여화(江山如畵·사진)라는 글씨는 조광진이 지두로 쓴 글씨에 추사의 발문이 부기되어 있는 탁본첩이다. 한예(漢隸)의 필의(筆意)가 담긴 글씨로, 안진경의 글씨를 얼마나 익혀 썼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좋은 글씨다. 하지만 아직도 안진경의 품을 떠나지 못한 느낌을 주고, 오히려 추사의 서체를 모방하여 쓴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추사의 충고를 받아 들인지 얼마 되지 않을 때 쓴 글씨 때문일 것이다. 아마 나이는 어려도 도움을 준 추사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은 것인지도 모른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추사발문에 패수귀객(浿水歸客)이란 제첨으로 보아, 추사가 부친인 김노경이 평양감사로 가자 아들로서 시봉차 가있다가 돌아올 즈음 눌인의 제자들이 기념으로 만든 글씨첩이 이것인 것 같다. 추사도 존경의 의미로 한나라 예서의 필의로 안진경 체의 글씨로 또한 발문을 쓴 것 같다.

눌인과 추사 이 두 분은 이런 인연 때문인지 그 이후로 끊임없이 편지 왕래를 하며 글씨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눌인은 아들을 서울로 보내 추사에게 공부시켰을 정도였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우리 서예사에 있어서 매우 뜻 깊은 만남으로 이 첩(帖)은 이 상황를 증명하는 매우 값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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