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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법을 가꾸는 마음

이남철 법무사(서울중앙지법 외부회생위원)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 생각나는 비내리는 가을 밤이다. 드라마 '쩐의 전쟁'과 '대물'의 원작만화로 유명한 박인권 화백이 쓴 다른 작품 '국수의 신(神)'이라는 만화가 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전개된다. 때는 조선 후기, 제주도 태생의 고현묵이라는 국수의 명장(名匠)이 있었다. '꿩 메밀국수'의 달인으로 사옹원(司饔院,궁중의 음식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에 차출되었다. 국수를 좋아하는 임금님이 요청을 하면 즉시 대령을 하였는데, 언제 먹어도 천하일미였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양이 적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임금이 한 그릇 더 말아 오도록 시켰다. 그런데 고현묵은 "추가는 없습니다. 차라리 제 목을 치시지요"라며 거절했다. 놀란 신하가 어명이라고 다그치니, "국수를 맛있게 드시는 방법은 소식에 있습니다. 적당한 잔미(殘味)를 남겨야, 다음의 맛을 부르는 소미(昭味)가 나오는 법입니다. 음식의 진정한 맛은 앞이 아닌 먹고 난 다음인 후미(後味)에 있습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언젠가 조정에 외교적으로 부담이 되는 청나라 사신이 왔는데, 심기가 몹시 불편해 있었다. 그때 고현묵은 사신에게 꿩 메밀국수를 대접하여 단번에 노기를 풀게 하였다. 신기해서 물으니, "사람의 열을 식혀주는 산조대추씨를 달여 넣어서 그렇다"고 하면서, "몸 밖에서는 사람이 음식을 다스리나 안에서는 음식이 사람을 다스린다"고 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국수를 재료와 국물, 곁들여 먹는 것 등으로 분류하면 수백종이 넘는다고 한다. 국수의 종류만도 그러한데 음식 전체를 놓고 보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우리네 지식이나 정보도 그렇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그렇게 수많은 정보와 지식은 사람이 만들지만, 학습을 통해 익히게 되면 그것이 사람을 만들게 된다. 무엇을 먹는가와 무엇을 학습하는가는 같은 이야기다.

법도 그렇다. 사람이 법을 만들지만, 일단 만들어진 법이 내면에 의식화되면 그것이 개인의 말과 행동을 좌우하고, 국가적으로는 구성원 모두를 다스린다. 어진 국민과 참된 국가는 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법치국가에 산다. 법을 만들거나 고치는 기관은 국회요,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곳은 사법부요, 법을 집행하는 곳은 행정부이다.

국가기관 어느 곳이나 다 법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국수의 신'에서 고현묵은 "조리사는 음식을 빚기 전에 마음부터 빚어야 한다"고 했다. 법도 마찬가지다. 법을 만들거나 고치거나, 적용을 하기 전에 마음부터 가꾸어야 한다. 어떤 마음일까. 축자소언(祝子小言)에 '담백해야 몸을 기르고, 담백해야 백성을 기른다'는 말이 나온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리라. 깊어가는 가을 밤, 다시금 되짚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