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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우리는 과연 선진국일까?

신평 교수(경북대 로스쿨)

연말이 다가옴과 함께 천지간 사물이 모두 밑으로 가라앉는 듯하다. 그런 중에 대선정국의 어수선함이 약간 불편하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쟁점인 경제민주화에 관해 각 진영에서 내거는 내용들은 스산한 바람을 타고 어지러이 흩어진다. 우리가 어느 정도 크기의 사회안전망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현재 우리의 수준이 어느 정도 와 있느냐 하는 것에 직결될 것이다.

2010년 바로 이맘 때 일본의 쯔꾸바 대학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강연 중 일본의 대학생들에게 요청했다. "한국이 지금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한번 들어 봐주세요." 놀랍게도-적어도 내게는-80% 이상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일본인들은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데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거의 모든 학생들은 한국이 이미 선진국으로 진입했다고 인정한 셈이다.

2년 후에 그러니까 올해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중소도시에서 여성들을 상대로 강연한 적이 있다. 그때 다시 그들에게 "우리는 지금 선진국일까요?" 하는 물음을 던졌다. 대충 40%의 주민들이 팔을 올렸다.

결국 한국 밖의 세계적 시야에서는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대접을 받는 셈이고, 우리 국민들은 상당 부분 이에 동의하면서도 주저하고 있다고 매듭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딱 결론을 내려버린다면 허전하게 생각할 국민들이 적지 않지 싶다.

경제적 양극화의 회오리 속에서 하루하루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런 현상 말고도 우리 사회는 선진사회라고는 말하기 힘든 치명적 약점이 있다. 그것은 공정한 게임의 룰이 우리 사회에 대단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상식이 통하고 합리적인 예측에 기초한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 속에서 가진 자들이 행사하는 날(粗) 것의 폭력이 행동의 반경을 넓힌다.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가장 크게 저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패거리 문화의 창궐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또 다른 말로 하면 연고주의, 정실주의의 횡행이다. 사회 전체가 이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 특히 다른 곳에서보다도 가장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행사되어야 할 사법(司法)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연고주의의 폐해는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의 공권력을 불신하게 만드는 근본원인이 된다.

'전관예우'는 바로 그 상징적인 현상이다. 도대체 제대로 된 나라에서 우리처럼 이렇게 전관예우가 기승을 부리는 나라는 없고, 더욱이 '법조브로커'라는 해괴한 용어가 버젓하게 활보하지는 않는다.

대선정국을 바라보며 갖는 희미한 두통이 왜 생길까 궁리한다. 답이 떠오른다. 왜 대선주자들은 어느 누구도 "전관예우 따위가 없는 새롭고 공정한 세상을 열겠습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지 않을까? 모를 일이다. 그들이 국민들 염원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지 아니면 내가 아큐(阿Q)같은 실없는 바보에 불과한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