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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가을의 여정

신평 교수(경북대 로스쿨)

세상에 외롭지 않은 것은 없다. 사람이 외로우면, 철따라 식어가는 바람도 외롭고, 그 바람이 스치는 달빛도 외롭다.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에 관한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이란의 영화감독이 한 말이 인상적이다. "김 감독은 고독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지요." 고독을 삶의 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고독에 순응할 때, 사람의 창의성이 솟아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이 땅에서 가장 외롭게 살다간 선비 중 한 분인 다산 선생은 목민심서 해관(解官) 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깨끗한 선비의 돌아가는 짐 꾸러미는 모든 것을 벗어던진 듯 조촐하게 해야 한다. 낡은 수레, 여윈 말이어도 맑은 바람이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게 한다(淸士歸裝 脫然瀟灑 弊車羸馬 其淸飇襲人)." 벼슬길에 올라도, 변호사로 돈을 많이 벌어도 항상 그곳에 머무를 수는 없고, 언젠가 떠나야 할 날은 오기 마련이다. 이때 간소한 몸가짐으로 가볍게 물러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사에는 영속이란 없는데 그것이 있는 듯이 착각하며, 무엇을 오래오래 지니려함은 부질없는 짓이다.

기실 삶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구약에 나오는 수천 년 전 일화건 당송(唐宋)의 어지러운 세상을 풍미한 시에서건, 우리는 거의 이질감을 갖지 않은 채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백의종군 길 이순신 장군의 피눈물 배인 한숨은 여전히 우리 가슴을 때린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사람이 사는 형태는 약간씩 변해왔다.

지금의 세상은 그 특징의 하나로, '무명(無名)의 반란(反亂)' 시대로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과거에는 정보의 유통 제약으로 사람의 이목은 극소수의 '현명'(顯名)을 가진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에 생겨난 수많은 동호인 클럽,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번창에서 보듯이, 이제 아무리 무명의 사람이라도 자신의 마음먹기에 따라서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 모두가 존엄한 인격의 주체라는 인식은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 점을 우리가 흔쾌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보다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법조인의 과다한 엘리트 의식은 사실 삶을 제약하는 커다란 족쇄이다. 이렇게 하여 타인에 대한 여유와 관대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참으로 멋진 일이다.

이 가을에 각자의 고독을 안은 채 다른 사람과 함께 길을 떠나보자. 생기를 떨군 대나무 밭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긴 산 길을 올라간다. 뭇나무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흔들린다. 반기는 것도 아니고 반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나무들의 처절한 외로움을 앞에 두면 위안이 찾아든다. 그것은 가을의 얇은 햇빛처럼 포근히, 하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찾아온다.

옆에 있는 다른 이를 보자. 그에게도 나와 똑같은 쓸쓸함이 차있다. 연민의 손으로 이를 쓰다듬어주려 할 때 우리는 갑자기 변한다. 담을 올라가는 담쟁이처럼 우리에겐 동류와 연대의식이 갑자기 솟아난다. 그것은 우리를 편하게 한다. 그리고 강하게 한다. 우리가 아무리 외로워도 더불어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