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고미술 이야기

(18) 김범부 초상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1992년쯤인가 귀티가 나는 중년 부인께서 인사동 있던 문우서림에 들어오신다.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니 아는 분이시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보자기에 싸가지고 온 족자 하나를 꺼내어 보여 주신다. 바로 범부 김정설(凡夫 金鼎卨;1897-1966)의 초상화(캐리커처·사진)다. 범부선생은 소설가 동리 김시종의 친형으로, 동서양 사상에 능통하였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린 이는 근원 김용준(近園 金瑢俊;1904-1967)이라고 하는데 보는 순간 근원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 족자는 범부선생과 가장 친하게 지내시던 당신의 남편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이젠 범부선생 가족과는 연락도 되질 않고 남편도 멀리 떠났고 그린 사람은 6,25중에 없어지고 말았다. 나도 죽을 날이 멀지 않으니 당신이 이 세 분을 잘 아니 소문 내지 말고 알아서 정리를 해 달라신다.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고, 저야 말로만 듣던 당대 사상가로 이름을 떨친 김범부의 모습을 그린 그림도 그림이지만 근원의 수필을 무척 좋아하는 저로서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하고 인수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아니어서 친한 분이 찾아와서 권하였더니 즉석에서 가지고 가시면서 혹 가지고 싶을 때가 생기면 다시 사가라 하신다. 이렇게 정리가 되고 나서도 마음속에 무언가 편치가 않다. 두고두고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약간의 여유만 있어도 어떻게든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꽤 오래갔다. 십여 년이 지나고 우연한 기회에 가지고 계신 분께 넌지시 말씀 드렸더니 쾌히 가져가란다. 그것도 예전 값에 한 푼도 더 부치지도 않고 주신다. 좋아하다 보면 그 분들이 지하에서 도와주신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 서재에서 가끔 펴 볼 때마다 빙그레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단장을 집고 탁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46세의 범부선생의 모습은 마치 시골 촌 늙은이 같아 부담 없이 다가서서 말을 걸 수 있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둥근 안경과 턱 수염은 양의 동서를 넘나들며 막힘없던 그의 철학 정신이 보인다. 이는 적당한 농담을 섞어 거친 붓 터치의 선묘로 선생의 사상가라는 무거운 이미지를 살포시 익살스럽게 그려낸 근원의 탁월한 솜씨다. 글씨는 모두 범부가 썼다. 오른 쪽 상단에는 "자조(自嘲)"라 하고 "반세기 동안 무엇을 하였는가(半世聊爲耳)"라고 썼다. 왼 쪽에는 "범영운(凡影云:범부의 그림자 즉 범부의 초상화라 하더라)"이라 하였고, 그 밑에는 임오년 가을날에 근원이 그렸음을 나타냈다. 족자를 가져 온 분은 효당 최범술(曉堂 崔凡述;1904-1979)선생의 부인이시다. 주지하다시피 효당은 경상도 다솔사(多率寺)란 절을 중심으로 불교와 학교를 통한 애국 운동과 전통차 운동을 한 분이다. 효당과 범부와 근원은 모두 경상도 분으로 일찍이 모두 일본에 건너가 공부하였고, 분야는 불교학·철학·미술로 달랐으나 암울한 시기를 서로 도와가며 민족을 위해 애쓴 애국자였다. 각 분야에서는 모두 독보적 존재인데 이 족자 속에는 세 분으로 인한 일제 말의 분위기를 엿 볼 수 있어서 좋다. 족자 첫 부분에는 효당의 글씨로 "김범부선생초상 근원작(金凡父先生肖像 近園作)"이라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