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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비통(鼻通)

이남철 법무사(서울중앙지법 외부회생위원)

제69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열네번째 영화 '숨'에서 죽음이 얼마남지 않은 사형수가 자살을 시도하는데, 그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 여인이 교도소에 면회를 간다. 들이마시는 숨을 막고자 하는 남자와 막혀오는 숨을 내쉬고 싶은 여자, 그들은 '숨'의 교환을 통하여 상처를 치유 해간다.

1981년 프랑스의 아카데미인 세자르상을 수상한 거장 장자크 아노(Jean-Jacques Annaud 1943~)감독의 걸작 '불을 찾아서'에서는 8만년 전 어느 평화로운 부족이 다른 원시인 부족의 습격과 늑대들의 공격으로 '불'을 잃게 되자 세사람을 선발하여 불을 찾아 떠나게 한다. 세사람은 각자 영성, 지성, 감성의 영역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감성의 주인공이 오감중에서 먼저 후각인 코를 킁킁대면서 이를 통하여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멀리 있거나 보이지 않는 적과 짐승의 위험을 예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듯 후각은 생존의 근본적인 기능을 하였다.

향(香)전문가 송인갑이 쓴 '후각을 열다'라는 책에는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명남루 총서'로 유명한 최한기(崔漢綺,1803~1875) 선생이 쓴 기측체의(氣測體義)와 신기통(神氣通)의 '비통(鼻通)'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선생은 '비통'에서 "모든 감각 가운데 가장 빠르고 거짓됨이 없는 것은 오직 코로 냄새맡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은 거짓과 착각 속에 빠질 수 있지만 냄새만은 기(氣)를 타고 코로 통하기 때문에 언제나 빠르고 거짓됨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사람의 눈과 귀와 같은 다른 감각기관은 스스로 조절할 수가 있다. 보고싶지 않으면 눈을 감으면 되고, 듣고싶지 않으면 귀를 막으면 된다. 하지만 코를 막으면 숨을 쉴 수 없어 죽게 된다. 이렇듯 숨을 쉰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의 기능이 아니다. 후각은 스스로 조절할 수가 없으며, 곧 생명과 직결되기에 자연적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사람의 냄새는 주변 물체에 밴다. 사람이 살고 있는 건물의 가구나 물건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오랜 삶의 궤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사람의 영혼과 정서가 묻어 있어 그와 일생을 함께한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내면의 냄새까지 물건에 밴다. 어느 집, 어느 공간의 향기나 분위기는 바로 그 사람의 냄새이자 내면의 향기를 나타낸다.

이렇듯 빠르고 근원적 감각인 코와 냄새, 특히 직감이 발달한 국민의 후각에 포착되는 삼부기관의 냄새는 어떤 것일까. 삼권분립에서 입법부의 상징인 여의도 국회의사당 하면 떠오르는 냄새는 어떤 것이고, 행정부를 상징하는 세종로 하면 떠오르는 향(香)은 어떤 것이고, 사법부를 상징하는 서초동 법조타운에 배어있는 느낌은 어떠한가.

국화향기 그윽한 이 가을에 '숨'의 통로인 코(鼻)와 향기(香氣)이야기를 하는 것은 법조계의 두루 원만한 '소통'과 법조타운에 '순담한 향기'가 배기를 기원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