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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17) 도상주역(圖像周易)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우리나라는 인쇄술이 매우 발달하였다. 목판본이든 활자본이든 책을 만들려면 일단 글을 지어야만 된다. 좋은 글이 있다 해도 그 글이 모두 목판이나 활자본으로 출간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와 글의 내용과 실용성, 경제적 비용 등 요즘 우리가 내는 책보다도 더 힘든 과정을 거쳐야 여려 사람이 볼 수 있는 출판물이 나온다. 이 중에 하나라도 미비하면 힘들여 지은 좋은 글은 원고(原稿)로 남아 그 주위의 몇몇 사람이 돌려 보다가 잃어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후대에 누가 그 내용에 반해 출판할 수도 있다.

조선 후기에 오면 당색이나 과거에의 불만으로 초야에 은거하여 제자 양성과 저작에 힘을 쏟은 학자가 많아지면서, 예술이나 학문으로 혹은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낸 사람도 많았다. 그런 사람 중에 많은 저서가 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출간을 못한 사람이 많았고, 글씨 또한 뛰어나게 잘 썼지만 세상에 존재감조차 없는 이름 없는 서예가도 매우 많았다. 이런 사정으로 조선후기로 내려오면서 귀한 원고 형태로 남은 사본(寫本)이 많이 전한다.


여기 소개하려는 '도상주역(圖像周易)'은 배와 김상숙(杯窩 金相肅, 1717-1792)이 친히 써서 소장하고 있던 책(사진)이다. 김상숙은 조선 후기 자기만의 글씨를 구사했던 개성 있는 서예가 중의 한 사람으로 개인적으로 필자가 매우 좋아 하는 작가다. 광산 김씨(光山金氏)의 문벌 좋은 집안이나 벼슬에 별로 뜻을 두지 않고, 낮은 직책 속에서 저작(著作)과 글씨로 일생을 살아간 분이다. 중국의 종요(鍾繇)의 글씨를 주로 쓴 깔끔하면서도 부드러운 운필을 구사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맑게 하였다.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도 종요체를 자주 썼지만 일생을 배와처럼 쓴 사람은 없었다. 또 논어(論語)와 주역(周易)을 좋아하여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논어나 주역이 고문이기에 문장이 매우 담백하다 하여 예부터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즐겨 읽는다고 하는데, 글씨가 둥글둥글하고 모가 나지 않은 종요체가 글씨 중에는 매우 담백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하여 주역이나 논어에 아주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이 책의 제목은 주역으로만 적혀있다. 하지만 책을 펼쳐 보면 첫머리에는 주역 64괘(卦)의 괘가 정교하게 그려져 있고 그 괘에 해당하는 효사(爻辭)와 소상전(小象傳)이 괘의 양과 음에 해당하는 모양 속에, 괘명(卦名)과 단사(彖辭), 단전(彖傳)과 대상전(大象傳)이 괘 밖에 깨알 같은 글씨로 일일이 적혀있고, 문언전(文言傳)은 64괘의 건괘(乾卦) 곤괘(坤卦) 다음에 들어 있다. 도상의 64괘를 다 쓴 후에 계사전(繫辭傳)을 두 배 이상의 큰 글씨로 썼다. 그러나 설괘전(說卦傳)·서괘전(序卦傳)·잡괘전(雜卦傳)은 들어있질 않다. 괘에 쓴 작은 글씨나 뒤에 쓴 큰 글씨나 활자로 찍은 듯 고르고, 혹 잘못 썼을 때는 새로 써서 위에 덧붙였는데 얼마나 깔끔하게 처리했는지 구별이 잘 되질 않는다.

중국이나 일본 등 이렇게 도상(괘)을 그리고 해당하는 내용을 기록한 주역은 본적이 없다. 하여 필자는 이 책을 『도상주역』이라 명명하고 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유일본이라 여겨, 내 서재의 첫 번째 귀중본으로 삼았다. 책 첫머리에는 김상숙이 즐겨 사용했던 도장 광산세가(光山世家), 김상숙인(金相肅印), 계윤씨(季潤氏) 세 방이 찍혀있다. (계윤은 김상숙의 자)

20년 전에 우연히 송씨 댁에서 산 책 속에 들어있던 이 책이, 배와 선생의 글씨를 유독 좋아하는 나의 서재에 들어 온 것은 전생의 인연인가 한다. 후손 댁에 주역 말고도 논어를 친히 쓴 책이 있었다 한다. 혹 논어가 어느 곳에 남아 있다면 이 책과 좋은 해우를 하리라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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