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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어떤 만남

신평 교수(경북대 로스쿨)

삶은 이런저런 만남의 기록이다. 첫사랑의 아득한 만남은 바닷길 조수처럼 밀려들어왔다 쓸려나가기를 반복한다. 칼로 베인 몸에서 솟아나는 선홍빛 피 같은 만남도 있다. 이런 특별한 만남이 아니더라도 의미를 가진 많은 만남이 생겨나고, 우리의 삶은 만남의 교차 속에서 직조된다. 삶이 좀 더 좋은 피륙이 되기 위해서는 따뜻하고 행복한 만남이 자주 일어나야 할 듯하다.

우리를 낳아 길러준 부모님과의 성스런 만남을 능가하는 만남은 없으리라. 그후 남녀의 관계로 혹은 훌륭한 학덕을 지닌 스승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다. 거룩한 종교와 우리의 내면이 공명할 때, 그 만남을 일생의 찬란한 보화로 여겨 종신토록 신에 대한 헌신을 할 수도 있다.

얼마 전부터 시(詩)의 세계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한평생 글쟁이로 살아오긴 했어도, 산문의 수단으로는 마음에 고이는 빛을 충분히 밖으로 꺼내 보일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던 차, 시가 슬며시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만남을 귀하게 받아들였다. 시를 쓰기도 하고 남의 시를 읽기도 하며, 시의 기예를 다듬어 갔다. 정신적인 편안함과 함께 때때로 어느 것에도 비견할 수 없는 열락의 순간들이 찾아왔다. 잘된 시를 읽으면, 그 시가 품은 향기는 어느새 내 혈관을 타고 찌리리 흐른다. 일상의 분노와 번잡함에 시달릴 때 혹은 공허한 눈길이 머무를 곳이 없게 되었을 때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시를 쓴다. 그러면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 무질서와 혼돈을 극복하고, 나는 명징한 질서의 꼭대기에 서서 서늘한 눈으로 삶을 관조할 수 있게 된다.

시와의 만남을 즐기면서, 우리가 가진 삶의 본질이 내 눈 안으로 투영되어 옴을 느낀다. 우리의 삶은 슬픔의 바다다.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강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연약하고 부스러지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여전히 바람은 불고, 달은 교교히 빛난다. 그러기에 삶은 엄숙하고,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하여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가라앉지 않으려 한다. 모든 이의 입에서 뱉어지는 슬픔의 한숨들이 모여 망망대해를 이룬다 하더라도 우리는 고독한 여정을 헤엄쳐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내 나이 쉰여덟 봉우리/일순(一巡)의 예순 손끝에 닿는 듯/가만히 바라보는 내 안의 나/지구의 중력으로 목덜미는 깊숙이 가라앉고/거쳤던 시간의 마디마디는/날카로운 가시 되어 찌른다/부끄러운 모습 감추려고/얼굴에 헛기침 발라본다

지금부터 조심조심 발걸음 디뎌/다른 봉우리 다다를 때/행여 내 가슴에 환한 빛의 다발 모아질까/내 미소가 타인의 가슴에 별로 반짝일 수 있을까(최근의 자작시 '쉰여덟')

이 시에서처럼 나는 잘 추스른 몸으로 부담을 주지 않는 채 타인의 삶에 들어가고 싶다. 그래서 그에게 반짝이는 별의 위로를 전하고 싶다. 이렇게 시는 남과 나의 삶이 소통하는 귀중한 도구이다. 그 소통을 통해 진정한 위로의 뜻을 파악할 수 있다. 남도 위로해줄 수 있어야 하나 나도 위로받아야 한다. 우리 모두 슬픔의 바다를 떠도는, 상처 입고 불안에 떠는 존재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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