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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16)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

일본 동경의 '간다(神田)'거리는 고서점 거리로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도 크고 전문성이 있는 곳이다. 중국의 '유리창(琉璃廠)' 거리가 너무 옛 것에 치우쳐있다고 한다면, 간다는 동서고금을 넘나든다고 할 수 있다. 이 거리의 책이 신진대사를 거쳐 지금의 일본문화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동경에만 가게 되면 이 거리는 꼭 들려오게 되고 그래야만 동경을 다녀온 느낌이 든다.

5, 6년전쯤 무슨 일인지 기억은 없지만 동경에 갔다가 잠깐 간다의 서점 거리에 갔다가 자주 가는 반도서점(飯島書店)에 들렸다. 이 서점은 간다의 중심거리라 할 수 있는 큰길가 중간쯤의 2층에 자리하고 있다. 간다의 서점들은 각기 특색이 있는데 이 서점은 옛 글씨나 법첩(法帖), 또는 글씨, 인보(印譜)등을 전문으로 하는 서점이다. 항상 그렇듯이 창문 쪽에는 일제강점기부터 근간까지 나온 서예관련 잡지가 쌓여 있고, 안쪽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유명한 법첩과 인보집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근대의 김농(金農)이나 양수경(梁守敬) 등의 친필도 걸려있다. 쭉 둘러보다 선반에 다른 인보집과 섞여있는『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인보는 '인집(印集)', '인존(印存)', '인수(印藪)'등 다양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특히 이 인보집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적인 인보집이며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憲宗)께서 실제 사용하던 인장과 직접 수집한 인장, 왕실에서 가지고 있던 인장을 당대 서화와 시문의 대가인 자하 신위(紫霞 申緯, 1769-1847) 등을 시켜 집대성한 매우 귀중한 인보집이다.

보소당은 헌종이 쓰시던 당호다. 그 당시에 옛사람 중에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의 호나 성이나 이름을 넣어 당호를 쓰던 유행이 있었다. 헌종은 끔찍이 좋아했던 중국의 소동파(蘇東坡)의 묵적을 가지고 있었던 인연으로 보소당이라 이름을 한 것이다. 소동파를 보배롭게 생각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헌종이 돌아가신 후 이 인보집에 실린 인장 실물이 불에 거의 소실되었다. 하여 고종(高宗) 때에 다시 몽인 정학교(夢人 丁學敎, 1832-1914) 등을 시켜 다시 보각(補刻)하였다. 그래서 이 인보집은 두 종류가 전하고 있는데, 헌종 때의 것은 매우 귀하고 고종 때의 것은 종종 보이는 편이다.

간다의 서점들은 받을 책값을 대부분 책 어딘가에 표시해 둔다. 보소당인존과 같이 놓여있던『비홍당인보(飛鴻堂印譜, 청나라 때의 유명한 인보집)』는 일본 돈으로 50만엔, 『오창석인보(吳昌碩, 청나라 말기의 유명한 서화전각가)』는 30만엔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의 인보집에는 각각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쓰여 있으나, 이 『보소당인존』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고 값은 5만엔이라 적혀 있었다.

이 서점 주인은 이 인보에 대해 전연 모르기 때문에 값이 매우 적게 적혀있어 싸게는 샀지만, 마음속으로는 우리의 문화수준이 아직도 이러한가하여 씁쓸하였다. 하지만 이국땅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책을 만나기도 어려운 일인데 살 수 있었다는 것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본에서 돌아와 다른 본과 대조를 한 후에야 이 책은 처음에 나온 헌종본이 아니고, 고종 때에 나온 복각본임을 알았다. 또 이 책은 1920년대 일본에서 제일의 주자학자로 칭송을 듣던 우치다 슈우헤이(內田周平)가 지니고 있었던 책으로 어떤 이에게 준다는 서명이 쓰여 있어 그 의미가 남다른 것이었다.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