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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잘 듣는 귀(耳)

이남철 법무사(서울중앙지법 외부회생위원)

인간관계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1955)의 아들 블레일은 태어날 때 귀가 없었다. 말을 배울 무렵 큰소리가 나면 아들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본 데일 카네기는 어느날 아들의 청력이 미세하게나마 살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카네기는 아들을 무릎에 앉혔 놓고 아이의 두개골 아래쪽에 있는 약간 뾰족한 뼈에 자신의 입술을 대고, "너를 사랑해!"라고 크게 말했다. 아이는 그 말을 알아 들었는지 까르르 웃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과 보청기의 도움으로 블레일은 정상적인 소통을 할 수가 있었고, 대학을 마친 후 난청으로 불행을 겪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어느 여름날 시골 마루에서 약 30분간 낮잠을 자다가 "땡!" 하고 오후 1시를 알리는 단 한번의 벽시계종소리에 잠을 깬 적이 있다. 그때 신기했던 것은 잠들기 전 "땡 땡 땡… " 하고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분명 있었을 터인데 들었던 기억이 전혀 없었다. 도대체 언제 열두번 울렸지? 참 이상했다. 30년 쯤 후, 어느 날 똑같은 현상을 경험했다. 누군가의 말을 듣긴 들었는데 어떤 때는 들었다는 인식조차 없고, 어떤 때는 천둥소리 같이 귀가 번쩍 뜨이는 것이었다. 왜 그러는 걸까?

중국 춘추전국시대 거문고의 달인 백아(伯牙)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절친한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들을 표현하면 종자기는 "하늘 높이 우뚝 솟는 느낌은 마치 태산처럼 웅장하구나"라고 하고, 큰 강을 나타내면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이 마치 황하강 같구나"라고 그 음악을 알아 주었다. 그런데 종자기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지자 백아는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거문고 줄을 스스로 끊어 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켜지 않았다.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유명한 지음(知音)고사로 백아절현(伯牙絶絃)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세가지 이야기 중 첫 번째는 물리적으로 듣는 것 자체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의 것은 들리기는 들리되 인식의 문제이고, 세 번째 것은 공감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저기서 경청(傾聽)과 소통(疏通)이 회자(膾炙)된다.

법조주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건 관련자들이 상대방의 말은 마이동풍(馬耳東風)격으로 흘려듣고, 법적으로 별 의미없는,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말을 반복함으로서 분위기만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 잘 참다가도 이쯤되면 중간에 말을 자르고 개입하게 된다. 의미있는 말을 듣고 정리한다는 것이 자칫하면 듣고 싶은 말만 남기게 되어 양쪽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공감을 기초로 한 실체 파악을 하려면 양쪽 문을 열어놓고 끝까지 경청하는 공정한 귀, 그리고 매번 마치 처음 듣는 것 같이 맑고 깨끗한 귀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