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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여백의 안목

이남철 법무사(법무사협회 법제연구위원)

세종대왕의 셋째아들이자 풍류객인 안평대군(1418~1453)은 1447년 음력 4월 어느 날 밤 신비하고 이상한 꿈을 꾸었다. 박팽년(朴彭年)과 함께 산행을 하다가 높은 벽처럼 치솟은 산들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온통 복숭아나무가 심어져있는 도원(桃源)을 보았다. 거기에는 꽃들이 만발하고 구름과 숲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을의 집들은 텅비어 있었다. 싸리문은 반쯤 열려있고 토담도 무너져 있었으며, 오직 시냇가에 빈 조각배만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안평대군은 문득 꿈에서 깨어나, 당대의 화가 안견(安堅 ?~?)을 불러 꿈에서 본 광경을 그리게 하니, 이것이 바로 안견이 단 3일 만에 완성하였다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이다.

몽유도원도는 크기가 38.6×106.2㎝ 로 대형작품은 아니지만, 안평대군의 제목과 제찬에 이어 집현전 문인들을 포함한 21명의 명사(名士)들이 직접 쓴 찬시(贊詩)와 찬문(贊文)을 붙였는데 무려 20m에 달한다. 이 걸작에 잘 나타나있는 화법이 북송(北宋)대의 화가 곽희(郭熙, 약 1020~1100)의 삼원법(三遠法)이다.

삼원법은 곽희가 그의 저서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산수화의 기본적인 표현기법으로 주장한 것으로 고원법(高遠法,), 심원법(深遠法), 평원법(平遠法)의 세가지 원근법(遠近法)을 말한다. 먼저 고원법은 산을 올려다보는 공간의 높이, 심원법은 산의 골짜기와 대상의 속을 들여다보는 데서 생기는 공간의 깊이, 평원법은 산을 멀리서 바라보는 데서 생기는 공간의 넓이를 말한다. 이러한 3원법은 작가의 위치와 거리,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는 동양화의 독특한 원근법의 원리가 되었는데, 나아가 안견은 여백(餘白)을 가미했다.

몽유도원도의 빈집과 빈배, 이상한 텅빔. 그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신선들이 사는 무릉도원을, 다른 혹자는 문종과 세조(수양대군)사이의 안평대군이 처한 정치적인 고립무원의 세계를 나타낸다고 한다. 생각건대 당시는 여말선초로 고려불화의 영향이 남아있던 시기인지라 여백은 공(空), 즉 이른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무심(無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살다가 법적인 문제가 있을 때, 한쪽 당사자는 자기 시각에서만 사건을 바라보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그림을 그리고, 다른 당사자는 같은 사실을 놓고 정반대의 시각에서 소설처럼 사건을 전개한다. 법조인에게 바람직한 시각은 어떨까? 요컨대 따뜻한 가슴으로 당사자들을 조력해 주되, 이편저편 선입견에 끌려다니지 않고 제3자적인 중심을 유지하며 분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곧 여름휴가철이 다가온다. 산중과 바다에 거닐다가 높이, 깊이, 멀리 보는 곽희(郭熙)의 삼원법(三遠法)에 한걸음 더 나아가 안견(安堅)의 여백(餘白)이 주는 안목(眼目), 즉 무심(無心)의 맑은 눈으로 돌아오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