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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15) 추사 편지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글씨는 전반적으로 말년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는 추사의 명성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빛이 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히 제주유배(濟州流配) 시절부터 별세할 때까지의 작품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는 벼슬살이를 그만둔 후이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귀양살이의 적적함, 말년의 쓸쓸함 등이 많은 작품을 하게 했던 것 같다. 과천(果川)시절의 작품에 유독 관지(款識)를 많이 했고, 그 외에는 쓴 해의 기록이 없어 정확한 작품연대를 추정하기가 어렵다. 또 제자인 소치(小癡) 허련(許鍊)이 판각한 다수의 탁본서첩 글씨가 있는데, 이는 일반 사람들이 추사를 알고, 추사체(秋史體)를 익히는 매우 중요한 학습용 글씨 첩이었다. 다시 말해 추사 이후 추사체를 공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책, 이것이 소치가 만든 추사 글씨 탁본첩(拓本帖)이었다. 어찌 보면 서울의 양반 자제들이 추사의 문집을 만들어 추사의 정신을 보려했다면, 진도 출신 제자가 추사첩을 만들어 추사글씨의 진면목을 보였으니 추사는 인생의 파란곡절은 많았지만 제자복은 있는 사람이었다.

시문(詩文)과 글씨를 같이 보면 추사의 전면(全面)을 보는 것이요, 글씨만 보면 반쪽의 추사를 보는 것이다.


보통 추사의 글씨는 세 단계로 나누어서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습작기로 24세까지의 글씨를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25세 때부터 청나라 연경(燕京)을 몇 개월간 다녀와서 55세에 제주도로 유배갈 때까지를 말한다. 세 번째는 제주도 유배, 방환(放還), 북청(北靑) 유배를 거쳐 과천에서 71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를 말한다.

이 세 번째 시절에 쓴 글씨를 보통은 추사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필자는 두 번째, 세 번째 시절을 같이 말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기교가 많아졌지만, 말년의 글씨는 글씨를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의 글씨처럼 너무나 고졸(古拙)하기 때문에 너무 노년 글씨만을 추사체라고 말하기보다는 중국에 다녀온 후로 달라지기 시작한 글씨부터 추사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 소개하는 추사편지(사진)는 아무런 관지가 없으나 내용이나 글씨로 보아 추사가 제주도 귀양시절 강진의 병영에 있던 제자 신헌(申櫶)에게 보낸 편지의 별지로 보여 진다. 추사글씨는 제주 시절부터 획이 날카로워지고 획의 살이 조금씩 덜어지는데, 이 편지에도 이런 형태가 완연히 나타나고 있다. 잘못 보면 대원군의 편지로 오인할 가능성도 있다. 초의 스님이 섬에서 적막하게 지내는 추사에게 몇 종의 책을 보냈더니 방해를 한 선주를 혼내주라고 한 것을 보면 추사도 대단히 화가 났나 보다. 년 전에 어떤 분이 가져다주면서 추사의 편지니 알아서 잘 사용해 달라고 주고 간 것인데, 볼수록 정이 가고 추사의 다른 일면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좋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