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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우주의 먼지

신평 교수(경북대 로스쿨)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할 때 밤하늘을 쳐다보면 작은 위로를 받는다. 수많은 별들이 있는 저 광대무변한 세계에서 극히 미세한 나의 존재가 갖는 문제가 심각한 것이 될 리가 없다. 미끄러져 가는 순간의 바람보다도 그 의미는 약할 수 있다.

그러면 우주는 과연 어느 정도 크기일까? 최근 급속히 발전하는 천체물리학의 성과에 따라 말해보자. 우리가 말하는 태양은 지구의 130만 배 크기이다. 이 태양을 지름 15cm의 공으로 바꾸었을 때 다음 별이 있는 위치는 서울에서 로스앤젤레스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그러니 우리가 쳐다보는 하늘의 외관과 달리 우주는 대부분 빈 허공이다. 그럼에도 우주 전체로 보아 별들의 수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류 수에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포 수를 곱한 만큼 있다.

입을 쩍 벌릴 만큼 놀라운 크기인데, 결국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우리는 우주의 티끌,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좋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런 존재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인가? 이 의문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동서고금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민해온 것인지 모른다.

이 자리에서 심오한 철학을 논할 것도 아니니, 쉽게 말을 이어보자. 우리가 형체의 면에서는 그렇게 보잘 것 없어도, 사유나 인식의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 속에 전 우주를 포괄하여 넣을 수 있다. 작은 먼지가 빛을 내며 우주를 향하여 말을 거는 것이다.

나와 우주는 이때 대등한 관계에서 병렬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말처럼 간단한 것은 아니나, 대충 이렇게 하여 우리는 깊은 공간적인 허무감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허무감은 우주와의 관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 인간 개체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이것을 심리적 허무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옥수수 밭에서 여름 뙤약볕 아래 김을 매고 있는 할머니라고 치자. 저 반대편에 서 있는, 엄청난 돈을 벌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 비해 나는 먼지에 불과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이 우울한 환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화가 상당히 진전된 요즘에도, 그런 차별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타인을 멸시하고 기회만 있으면 발로 밟아버리려고 하는 고약한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쌓은 부와 권력의 원천이, 살벌하고 비정한 경쟁의 논리에 온 몸을 맡기거나 떳떳치 못한 연줄을 얻기 위해 비굴하게 몸을 조아린 데서 유래함을 잊는다. 이들은 끊임없이 꾀를 내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거들먹거리는 그들 앞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주눅이 들며, 인간사가 어차피 그런 것이니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인정해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심정으로 고개를 떨군다.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게 옥수수 밭 김을 매고 있다고 하자. 그러나 이 겉모습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에어컨 바람 한 번 쐬지 못하더라도 내 삶이 누더기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곧 방학을 맞아 도시에서 찾아올 금쪽같은 손자에게 먹으라고 내놓을 삶은 옥수수를 연상한다. 이때 솟아오르는 그 벅찬 감정은 온 세상을 덮고도 남는다. 뜨거운 희열이 온 몸으로 퍼져감을 느낀다. 호미질 할 때의 힘든 고통은 삭아 내린다. 호미가 돌멩이를 때릴 때 나는 찢어지는 금속성의 소리도 귀를 괴롭히지 않고, 팔 근육에 전해지는 비릿한 통증도 순간뿐이다. 거뜬히 하루 밭일을 마치고 우물 물로 몸을 씻은 뒤 잠자리에 드는 나는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편안하고 만족한 심정이 된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나는 그들에게 먼지가 아니다. 만약 그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스운 일이다. 나는 나라는 존재 자체로서 그들을 뛰어넘고, 무한한 우주로 뻗어나며 우주 전체보다 더 귀한 존재로 거듭난다. 먼지가 우주로 무한히 확장하는 이 과정-겸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인간에게 허여된 아주 특별한 선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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