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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사법부의 과거청산

하태훈 교수(고려대 로스쿨)

'사법부 너마저'가 아니라 '그나마 사법부'여서 다행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가 일상인 현실에서 사법부 때문에 안도할 수 있어 한 가닥 희망을 보고 있다. 100여명이 투입되어 수십억을 들여도 새로운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디도스 특검이나 사즉생(死卽生)의 비장한 각오로 덤벼들었지만 재수사가 아닌 재탕수사의 모습을 보여준 검찰의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 여전히 개원조차 하지 못하면서 종북세력이니 국가관을 들먹이며 이념논쟁이나 하고 있는 국회. 살맛 안 나는 무더위에 그나마 사법부가 인권의 최후보루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 뒤늦은 오욕의 사법사 정리이지만 그래도 안하고 버티는 다른 국가기관보다는 낫다.

쿠데타를 감행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 세력들은 안위를 누리고 있는데, 그들로부터 고문을 당해 억울한 누명을 쓴 '학림사건' 피해자들은 사법부의 재심으로 31년이나 걸려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정부 비판적 학생운동단체를 반국가단체로 조작하여 정권유지를 위해 반인권적 불법을 자행한 주역들과 수사와 재판에 관여했던 법조인들은 승승장구하며 명예를 누리는 동안 숨죽여 살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에게 불명예의 멍에가 벗겨진 것이다. "피고인들의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여야 할 책무를 다하지 못한 과거 재판부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판결문에 적힌 사법부 후배들의 대리사죄와 반성이다. 그러나 당시 검사들이나 법정에서 고문사실에 대한 호소를 듣고도 묵살한 과거 재판부의 판사들은 침묵과 변명으로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라며 덮어두고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 우리 역사의 잘못된 산물이다. 내란죄의 수괴가 아직도 고개를 들고 추종세력들을 거느리며 뻔뻔하게 공식, 비공식 행사에 등장하고 검찰이 여전히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것도 불법한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청산하지 못한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2005년 이용훈 전 대법원장 취임 이후 과거사 정리 작업을 해왔다.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판결문 6500여건을 분석했다고 한다. 사법부의 권위세우기는 부끄러운 과거를 바로잡고 속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의 고문조작사건에 대해 법원은 재심 법정을 통해 잇따라 무죄판결을 내려왔다. 대법원에서는 과거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 총괄적으로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정리해야 할 과거사가 많이 남아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일부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여전히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2009년 9월 대법원에 접수된 유서대필 사건은 재심 판결도 아니고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사건임에도 2년 넘게 시간을 끌고 있다.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과거사 정리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사법부가 행한 법의 선언에 오류가 없었는지, 외부 영향으로 정의가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고 권위를 확립하려면 사법부의 자체적인 동력에 의한 객관적 평가 작업과 공개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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