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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공포를 이길 이성적 용기

신봉철 변호사(법무법인 이산)

공포는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할 때 드는 기분 나쁜 감정이다. 공포는 대개 공포 대상의 발생 전에 있다. 죽음의 공포는 죽음 전까지 있고 그 이후엔 죽음이다. 상해나 이별의 공포도 상해나 이별 전까지 있고 그 이후에는 고통이 있다.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 된 충격적 경험을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한국인들에게는 한국전쟁과 냉전의 트라우마와 휴전 상태에서 전면전의 공포가 함께 있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의 장래 해악에 대한 공포는 실재하는 위험보다 아마 클 것이다. 통상 고통의 공포는 고통 자체보다 사람을 더 위축시킨다.

민주국가는 다수가 소수가 될 수 있고, 소수가 다수가 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현재 다수라도 현재 소수를 두려워 할 수 있다. 공포는 억압을 낳고, 억압은 증오를 낳고, 증오는 안정된 정부에 심각한 독(毒)이다. 심각한 해악의 공포만으로 자유언론 억압을 정당화할 수 없다. 남자들은 마녀들에 대한 공포에서 여자들을 불태워 죽였었다. 비이성적 공포의 굴레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언론의 기능이다. 자유언론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자유언론이 실행되면 심각한 해악을 초래한다는 공포에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파악된 위험이 임박한 정도라고 믿을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미리 막아야 할 해악이 심각한 것이라고 믿을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토론을 통해 허위를 드러낼 시간이 있는 한, 처방은 더 많은 자유언론(more speech)이다(1927년 Whitney v. California).

위험의 실체를 모르면 그만큼 공포가 커져서 실제로 위험하지 않은 것도 무서워해 억압의 유혹에 빠진다. 공포대상(위험의 내용, 위험이 끼칠 해악의 크기, 해악에 이르는 속도)을 알면, 공포의 자리에 용기가 들 수 있다. 교육을 통해, 사람들은 자유언론 속에서 허위로부터 진실을 분리할 안목을 길러야 하고, 정부는 위험의심대상을 정해 적법한 방법으로 관찰하고 추적하며 수집해서, 숨겨진 위험들을 낱낱이 폭로해, 자유언론 앞에 놓아 실질적 해악을 미연에 막아야 한다.

역사가 된 이씨 조선과 달리 김씨 조선은 살아 있는 권력이다. 평화에 이르지 못한 휴전 중에 핵무기, 장사정포, 굶주린 국민들을 쥐고서, 당장이라도 한국 안전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듯이 자주 말하고 간혹 행동한다. 미국 국방장관 레온 파네타는 얼마 전 "한반도는 거의 매일 전쟁 직전(within an inch of war)"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세가, 해악의 개연성이 낮더라도, 그 위험을 반드시 피해야 하는, 해악이 극도로 심각해서, 자유언론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할 정도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1951년 Dennis v. United States).

김씨 조선과 이념적 심정적으로 연계됐고, 조직적 연계까지 의심되는 이석기, 김재연이 불공정하다고 믿어지는 방법으로 국회의원이 됐다. 정치적·법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슈다. 트라우마와 공포 그리고 경멸 속에서 서둘러 거칠게 '종북'을 억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성적 용기를 내서, 침착하게, 정부는 치밀한 관찰과 추적으로 더 폭로하여야 하고, 사람들은 '언행(言行)의 시장'에서 허위와 진실을 구별해내야 한다. 국회의원 이석기, 김재연, 임수경 등이 근래 한 언행에서 벌써 많은 것들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