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한자이야기

[한자이야기] 화승(火繩) Ⅱ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

드디어 삿갓과 스님의 시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제일 라운드입니다. 스님이 주인이고 연장자라 우선권이 있습니다. 뜸을 들이던 스님이 '조등입석(朝登立石)하니 운생족(雲生足)이오' 라고 읊었습니다.

아침에 입석대에 오르니 구름이 발아래 피어오르다 라는 뜻입니다. 이에 대한 알맞은 대구를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들은 삿갓은 시구가 떨어지기도 전에 '모음황천(暮飮黃泉)하니 월괘순(月掛脣)이라' 라고 응대했습니다.

저녁 무렵 옹달샘물을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렸네 라는 뜻입니다. 완벽한 대구가 아닐 수 없다. 아침과 저녁, 구름과 달, 발과 입술이 맞아 떨어지는 대구입니다.

스님은 패하였고 스님의 이빨이 뽑혀야 했습니다. 그러나 삿갓이 한 번의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그래 한번 더 하기로 약조했습니다.

스님은 열 받았습니다. 제 이 라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번에도 스님이 먼저 읊었습니다. '간송남와(澗松南臥)하니 지북풍(知北風)이오' 하였습니다.

냇가 소나무가 남으로 기운 것을 보니, 북풍이 많음을 알겠다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삿갓이 '헌죽동경(軒竹東傾)하니 각일서(覺日西)로다' 동헌의 대나무가 동쪽으로 그림자 지니, 해가 서쪽에 있음을 알겠다라는 뜻입니다. 이번에도 삿갓은 숨도 쉬지 않고 댓구를 지어 바쳤습니다. 그야말로 낙운 성시(落韻成詩)입니다.

스님은 삼 세 번을 외치며 또 읊었습니다.

'절벽수위(絶壁雖危)나 화소립(花笑立)이요.'

절벽이 비록 위태로우나, 꽃은 웃으며 매달려 있고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양춘최호(陽春最好)나 조제귀(鳥啼歸)라' 했습니다.

따뜻한 봄이 가장 좋으나, 새는 울며 날아간다는 나무랄 데 없는 대구입니다. 대결은 끝이 없었으나 서로 간에 미운 마음은 없었습니다. 정담도 무르익었습니다. 스님도 삿갓도 마음을 열고 세상을 논하고 삶을 곱씹었습니다. 모두 소개하지 못하지만 이것이 우리네 선조들의 삶의 한 자락이었습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