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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다양성

하태훈 교수(고려대 로스쿨)

연간 4만여 건에 달하는 상고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효율성이 우선일까, 아니면 대법원의 위상과 기능에 걸맞게 사회적 다양성이 충족되어야 할까. 우리 국민의 다수는 대법관 임명기준으로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다양성'을 중시하며 판사 출신 이외의 법조인들도 대법관으로 임명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의뢰하여, 전국 만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58.9%가 "판결에서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판사 출신 이외의 법조인들도 대법관으로 뽑아야 한다"고 대답한 반면, "폭증하는 사건을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재판 경험이 많은 판사 중에서 대법관을 뽑아야 한다"고 대답한 비율은 35.2%였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위해서 39.6%가 '진보·보수 성향의 대법관 비율을 동등하게 해야 한다'고 응답하여 판·검사 이외의 법조인(20.3%), 특정대학 편중 해소(20.1%), 여성 등 소수자출신(12.3%) 등의 기준보다 이념적 성향의 다양성 확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대법관 임명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판사 이외의 법조인을 대법관으로 충원하고 진보·보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한 비교일지 모르지만 대학에서도 학문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이른바 순혈주의와 동종교배를 경계한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학문에서도 동종교배나 동일계열 교배만으로는 우성인자보다는 열성인자가 우세하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외부의 다른 요소나 형질을 받아들이지 않고 폐쇄상태로 존재하는 유기체는 결국 쇠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학문의 창의성과 융·복합 활성화를 위해서 가급적 동일출신학교를 피하고 학문적 성과를 보고 교수를 임용하려는 것이다. 법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법관도 출신배경은 다르지만 직업수행과정에서 교류범위와 사회적 경험이 비슷하여 성향이 거의 동일해져 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법관으로만 대법원을 구성하면 한쪽으로 치우칠 우려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우려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대법원 구성에서 국민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사와 이익이 반영되도록 직업적 배경, 성별, 정치적 성향 등에 있어 다양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로 전원합의체가 활성화되고 각 부의 토론도 충실해졌음을 경험한 바 있다.

대법관 교체를 앞두고 대다수 언론들은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지적하면서 형식적으로 출신대학과 출신지역의 안배, 남녀의 비율 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설문조사는 대법관의 다양성이 '비서울대', '여성' 대법관 1~2명 정도의 구색 맞추기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국민은 이미 이러한 차원을 넘어서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다양성'까지 요구하고 있다. 법원 내부의 사람으로만 채우거나 이념적으로 비슷한 법조인만으로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은 국민의 기대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며 사법 불신의 해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