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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쪼개진 사회

신평 교수(경북대 로스쿨)

모란이 피었다. 흐드러지게 피었다. 모란이 필 때까지 한 해를 꼬박 기다린다는 시인도 있었으니, 모란은 가히 꽃 중의 꽃이다. 그 큰 꽃잎으로 봄날의 푸른 하늘을 감싸버린다. 모란의 향내에는 원초의 생명력이 잠재해 있다. 그런데 모란꽃에 코를 갖다 대면 언뜻 여름 냄새가 난다. 봄의 절정에서 여름을 밴 모란이 피어나고, 모란이 질 때 여름은 시작된다. 아, 벌써 봄이 가다니! 세월은 흔하디 흔한 멜란콜리를 뿌리며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만물은 나름대로 질서가 있고 그 질서 속에서 우리는 위안을 찾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숨 막히는 불편함이 적지 않다. 가급적 세상일에 눈 돌리지 않고, 아니 외면하며 살고 싶은 심정은 나만의 유별남이 아니리라.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우리 사회에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너무 분명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슈로 떠오른 어느 문제에서건 정론은 이미 없다. 그가 보수와 진보 어느 쪽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찬반이 갈린다. 그래서 어떤 일에 자신의 마음을 정한 사람이 조금 더 그 일을 자세히 들여보느라면 정반대의 견해가 불쑥 떠올라 시야를 혼란시킨다. 이게 뭐야? 어떻게 이따위 말을 할 수 있어? 이런 흥분된 상태에 이르게 됨을 걱정하여, 세상에서 벌어지는 화제에서 아예 몸을 숨기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때 '일극집중'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수도권에 권력과 경제가 집중되는 현상을 일렀다.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21세기에 들어서는 '양극화'가 시대의 화두가 되어 휩쓸고 다닌다. 경쟁의 심화로 경쟁에서 이기는 자와 그 낙오자 간에 생긴 경제적 격차의 확대를 꼬집는 말이다. 무엇이든 극에 치닫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고, 폐단이 크다. 양극화 속에서 경제적으로 우리 사회는 쪼개졌는데, 나아가서 우리는 보수와 진보의 명확한 구별이라는 현상 밑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또 쪼개졌다. 이래저래 우리는 쪼개진 사회의 한 부분에 위치하며 다른 쪽을 향한 분노의 마음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 보수와 진보의 편가름 중 어느 쪽에건 절대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보수나 진보는 식성과 입맛 같은 것으로 유전적 요인과 성장과정의 교육이나 체험에 의해 갈라진다는 것이다. 위협에 대한 민감성이 강한 사람은 보수, 새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강한 사람은 진보, 이렇게 절대선을 주장할 수 없는 이유로 양자가 갈린다고 한다. 그만큼 보수와 진보는 함께 사회를 위한 가치와 미덕을 나눠가지는 셈이지, 한쪽이 다른 쪽에 우월할 리는 없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관용이다. 일리가 있는 상대방의 주장을 과도하게 비판하는 사람은 관용을 잃었을 뿐 아니라 위선의 함정에 빠졌을 수 있다. "바보야, 문제는 관용이야(It's the Tolerance, Stupid)!"라는 대선구호가 나오면 어떨까 싶다. 떠나는 봄날을 쓸쓸하게 바라보며, 세상일에 초연하고 싶은 누구의 허전한 독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