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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이야기

[한자이야기] 허종(許琮)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

허종(許琮)은 조선조 성종 때 영의정을 지낸 분입니다. 기백이 강하고 도량이 넓었던 분으로 전해옵니다. 그가 과거에 급제하기 전입니다. 여러 벗들과 함께 산 속에서 과거 준비 차 글을 읽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로 보면 요즈음의 각종 고시 준비생들이 산수가 좋은 곳을 찾아 공부하는 것도 그 유래가 오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날 밤 이들이 묵던 절방에 도둑이 들어 옷과 신발을 몽땅 훔쳐 가 버렸습니다. 도둑맞은 사람들은 모두 수군거리며 외출할 방법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는데, 유독 허종은 태연히 붓을 가져다가 벽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미 옷을 가졌으면 신발은 두고 갈 일이지, 옷도 가져가고 신발마저 훔쳐 가 버렸으니, 이는 도(盜)선생의 의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를 보면 그는 그 나이에 이미 장자(莊子)를 읽었고, 거기에 나오는 도(盜)의 윤리(?)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도둑에도 도(道)가 있다는 것입니다. 방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 맞히는 것이 성(聖)이고, 가장 먼저 들어 가는 것이 용(勇)이고, 맨 나중 나오는 것이 의(義)이고, 상황 판단을 잘하는 것이 지(知)이고, 훔친 물건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인(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자에 나오는 도(盜)선생들의 도(道)입니다.

요즈음 표절(剽竊)문제가 학계(學界)가 아닌 정계(政界)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크게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표절은 외형적인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내면의 문제라 그 해악이 더욱 심각해 보입니다. 뼈저린 반성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비단, 논문 표절만이 아니라 도덕, 양심의 문제가 사회 전반에 널려 있는듯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 문제의 추궁만이 아니라, 앞으로 이런 문제의 반복입니다.

표절(剽竊)의 표(剽)는 빠르다, 사납다의 뜻으로 칼()을 날쎄게 휘두른다는 상형이고, 절(竊)은 훔치다, 도둑 등의 뜻으로 쓰이는데, 벌레가 구멍(穴)을 뚫고 쌀(米)을 파먹는 형상입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