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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글 도둑 천국

하태훈 교수(고려대 로스쿨)

4·11 총선이 끝나자 표절 쓰나미가 정치권과 학계를 강타했다. 박사 학위논문이 표절로 판명나자 여당을 탈당한 당선자도 있고 자고 일어나면 언론에 표절 의혹이 제기되는 당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전긍긍하며 표절 쓰나미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당선자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정계진출에 날개를 달아줄 것 같았던 박사 학위논문에 발목이 잡혀 공직도 명예도 다 잃을 처지다. 오탈자까지 그대로 베낀 논문을 걸러내지 못한 부실한 논문심사로 학계 전체가 매도되는 분위기다 보니 학위논문을 심사하기도 하고 또 학술논문을 쓰는 학자로서 얼굴을 들고 다니기 창피할 정도이다.

또 다시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의 정직성이 화두다. 지금 통용되는 검증의 잣대는 4+1이다.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세금탈루와 병역기피에 논문표절이 더해졌다. 청와대는 2010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는 고위공직 후보자들이 적지 않자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시스템을 강화했다. 강화된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 200문항에는 연구윤리부분 15개 문항도 포함되어 있다. 고위공직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내부적으로 사전 청문회를 거치고, 2~3배수의 유력 후보자로 압축한 뒤에야 받던 '자기검증 질문서'를 예비후보 단계부터 요청하고, 질문 항목도 기존 157개에서 200개로 늘렸다.

그러나 인사권자가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으면 강화된 검증제도 또한 말짱 도루묵이 돼 버린다. 위장전입은 필수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공직후보자가 국민 앞에 시인하고 사과만 하면 그냥 넘어간다. 아파트 다운계약에 의한 세금탈루도 다 아내 탓으로 돌리면서 안 낸 세금을 납부하면 면죄부가 주어진다.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 시행 이후 교수 출신 공직후보자는 거의 표절의혹을 받았다. 그들 중에는 불명예와 낙마의 아픔을 맛 본 이도 있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공직의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공직임명만 되지 않으면 더 이상 페널티는 없었다. 박사학위 논문이 취소되거나 교수직을 박탈당한 이는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도 탈당하니 잠잠해지려 하고 있다. 그만큼 표절에 관대한 것이다.

표절은 훔칠 표(剽)와 훔칠 절(竊)의 합성어다. 남의 글을 자기 글 인양 남의 이름을 떼 내고 자기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이니 도둑질인 셈이다. 학문적 비윤리를 넘어서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책이나 작곡 같은 지적 저작물도 재산으로 보호받고 있으니 표절은 책을 훔치는 행위나 진배 없다. 2000년대 이후에 계속된 표절논란으로 그동안 학계의 관용으로 숨어있던 규범이 이제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남의 글을 도둑질 한 사람이나 글 도둑을 잡은 사람 모두 관행이라 묵인해 주고 침묵으로 공모하는 분위기가 남아있다. 그래서는 연구의 세계화와 국제화를 꾀할 수 없다. 연구윤리도 국제적으로 승인된 연구윤리규범에 맞추어야 한다. 연구진실성에 대한 자기규율이 연구자와 글 쓰는 사람의 기본자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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