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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정치와 법

신봉철 변호사(법무법인 이산)

의회주권(parliamentary sovereignty)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영국에서 의회는 상원과 하원뿐만 아니라 국왕까지 포함하는 의미이다(the King in Parliament). 국왕은 의회의 정점이다. 더구나 영국 최고법원은 2009년 9월까지 상원 안에 있어 일부 의원들이 최고 사법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내각이 의회의 일부인 것처럼 최고법원이 의회의 일부였다. 사법은 독립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독립한 것으로 보여야 한다는 논리는 영국 대법원이 창설된 중요 근거였다. 미국 대법원도 1935년 이전까지 미국 의회 건물 안에 있었다.

먼 옛날 정치와 법은 구별되지 않았던 것 같다. 다툼은 누가 옳으냐의 문제였다. 동이 트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듯이 사람들은 점차 깨달았다. 옳은 사람은 없고 다만 서로 이해가 달라 입장이 다를 뿐이니 누가 옳은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제3자가 판단하게 하자는 내용으로 법이 정치와 점차 구별되고 떼어지고 독립되어 왔다.

정치와 법은 구별되지만 정치가 무엇인지 법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견 없는 정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경계도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의원과 법관은 일하는 장소가 서로 다르고, 의원은 법률을 만들고 법관은 판결을 하므로 하는 일도 서로 달라서 의원과 법관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과 사법을 구별하기는 매우 어렵다. 로버트 보크는 1990년 낸 책 '미국을 유혹하다: 정치가 법을 유혹함'에서 "법관이 입법자가 결정해야 할 곳에서 결정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정치문제(political question)는 법 밖에(out of justifiability) 있어 이에 개입할 수도 없고 개입하려고 노력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견해를 미국 대법원은 여러 차례 표명했는데 선거구 획정이 공정했는지가 쟁점인 사건(Colegrove v. Green)이 미국 대법원에 오자 대법관 펠릭스 프랭크퍼터는 1946년 법원 의견에서 "법원은 정치 덤불(thicket) 안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문제에서 법을 발견하려는 시도는 덤불 속에서 바늘을 찾으려는 무모한 바보짓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미국 국무장관 클린턴은 며칠 전 어느 자리에서 자기가 버마의 수치 여사에게 "당신은 이제 의회에 들어가고 그리고 타협(compromising)을 시작한다. 타협은 민주주의의 전부이다. 더러운 말이 아니다. 당신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부 사람들은 당신과 의견이 깊이 맞지 않는다. 그러나 타협은 민주적 절차를 이루겠다고 한 당신 약속의 일부이다"라고 전화했다고 말했다.

관용(tolerance)이란 말이 오래 전부터 사람들 마음에 심어져 점차 모든 사람들 사이의 모든 관계에 퍼져온 나라도 있고 불구대천(不俱戴天)이란 말이 아직도 죽지 않은 나라도 있다. 복잡하고 무거운 한국의 정치환경은 덤불과 같다. 그 속에 바늘이 있는지도 불분명하고, 있다고 전제하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며 바늘이라고 주운 것이 찾던 바늘인지도 모른다. 법원이 정치 덤불 안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펠릭스 프랭크퍼터의 말에서 정치 덤불 속에서 법관인 척 행동하지도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을 이끌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