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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약속

양승국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선거철이 돌아왔다. 이제 국회의원 후보 등록도 마감되었고, 총선에 발맞추어 후보자들이나 이들을 대표하는 정당들은 앞 다투어 '화려한' 공약(公約)을 내놓고 있다. 공약이란 공적(公的)인 약속(約束)이다. 라틴어 법 격언에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것이 있다. 이와 같이 고대로부터 일반적인 약속도 꼭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격언으로 내려오는데, 하물며 공적인 약속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내거는 공약은 모두가 이렇게 엄중한 의미를 갖고 있는 공약(公約)인가, 아니면 개중에는 한낱 공수표로 끝날 공약(空約)도 많을 것인가. 각 당에서는 최종 후보자를 내기 전에 사전 여론 조사 등 공천 작업을 거쳤고, 특히 야당에서는 총선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후보 단일화 작업도 거쳤다. 그런데 공천 또는 후보 단일화에 반발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후보자들이 있다. 만약 이들이 후보 공천 과정에서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규칙을 지키고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면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은 약속을 어기는 것이 된다. 그리고 후보자 중에는 총선이 다가오자 갑자기 당을 갈아타고 출마하는 철새 후보자도 있다. 자신이 어떤 정당의 당원으로서 정치를 한다는 것은 그 정당의 정강, 정책을 지지하며 자신도 이에 따라 정치를 하겠다는 유권자에 대한 약속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선거를 눈앞에 두고 갑자기 당을 바꾼다는 것은 이러한 약속을 믿고 있는 유권자들에 대한 신뢰를 배반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번 출마자 중에는 당연히 현역 국회의원도 있다. 유권자들은 이들이 4년 전에 18대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을 때 내건 공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때 내건 공약(公約)이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그대로 공약(空約)이 된 것이다. 부득이한 사정변경이 있었다고 항변할지 모르나, 4년의 기간 내에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사정변경이란 드물 것이며, 모름지기 국회의원 후보자라면 그러한 사정 변경의 가능성까지 감안하여 신중하게 공적인 약속(公約)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각 후보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내걸고 있는 공약에 있어서도 예산의 뒷받침이라든가, 다른 법규와의 충돌 가능성, 첨예하계 대립하는 이해관계인들의 이해 조절 가능성 등을 꼼꼼히 따져 우선 당선되기 위해 덮어놓고 내거는 공약은 아닌지 살펴야 할 것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들이 약속을 헌신짝 같이 여기는 풍토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이번 선거에는 총 104명(지역구 99명, 비례대표 5명)의 법조인이 출사표를 던졌다고 한다. 법조인이라면 누구보다도 앞서 약속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다. 아무쪼록 이번에 출마한 법조인들이 앞장서서 이렇게 약속을 헌신짝 같이 여기는 풍토를 갈아엎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