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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판단하는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신봉철 변호사(법무법인 이산)

대상이 무엇인지에 관한 의견을 내는 것이 판단이라면, 판단은 누구나 언제든지 한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 입은 옷의 남루함을 보고 그에게 돈이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어떤 남자는 여자가 자기 방향으로 웃는 것을 보고 그 여자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판단한다. 과거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검은 피부색을 보고 그 피부색을 가진 사람은 자유인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었다.

판단은 틀릴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지식이 아니다. 대상에 대하여 가진 생각이 지식이기 위해서는 이미 아는 기초에 어떤 추론(infer)도 하지 않아야 한다. 식당에 들어가는 사람을 보면 식당에 들어간다고 생각해야지 식사를 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이는 추론하는 것이고, 중년 남녀가 서로 '여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서로 '여보'라고 부른다고 생각해야지 그들이 부부라고 생각하면 이는 추론하는 것이다. 틀릴 여지가 있다. 그러나 지식은 추론 없이 확장되지 않는다. 과감한 혹은 세심한 추론과 그로 인한 참담한 실패 끝에 인류의 지식은 확장되어 왔다. 대상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기 전에 미리 판단하는 것을 특히 편견(prejudice) 혹은 예단이라고 부른다.

사실을 발견하고자 하는 재판(trial)이라는 말의 영문 표현은 일정 기간 동안 대상을 테스트해서 그 움직임을 보는 실험(實驗)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람이 겪는 시련(試鍊)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재판(裁判)이란 말에서는 느끼기 어렵다. 재 판(trial)이 시련(trial)이라면 그 시련은 당사자가 겪어야 하는 시련이 아니라 법관이 겪어야 하는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법관의 판단은, 다툼에 이해를 가지지 않았고 법을 공부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진실과 진리의 발견이라고 추정될 수도 있고, 사실을 체험하지 않았고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편견이라고 추정될 수도 있다. 사람은 언제나 부분적으로 알 뿐 모든 것을 알지 못하므로 진실과 진리의 발견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것임을 생각해보면, 법관의 판단을 일단 편견이라고 추정한 다음 판결서의 이유를 읽고 결론도출 과정에서 법관이 겪었을 시련의 고통이 전해지면 그 편견의 추정을 깨는 것이 아마 진실과 진리에 더 가까이 가는 방법일 것이다. 진실과 진리를 말할 책임을 법관이 지는 것이다. 신뢰는 믿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행동에서 생기지 믿어달라는 말에서 생기지 않는다. 믿어달라는 말은 주로 사기꾼들이 한다.

예수는 '판단하지 말라(Judge not)'(마 7:1)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법관은 있고 있어야 한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달 27일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법관에게 칼이 있다면 가느다란 한 가닥 말총에 매달려 천장에서 그의 머리를 겨누고 있는 다모클레스의 칼이 있을 뿐입니다. 만일 그 가닥에 조그만 상처라도 생긴다면 언제라도 그 칼이 법관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한다. 한 가닥 말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가닥에 상처는 누가 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