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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그리운 스기하라(杉原)선생

신평 교수(경북대 로스쿨)

동경 중심부에서 전철을 타 쿠니다찌(國立)역에 내려 히토쯔바시(一橋)대학으로 가는 길 양 옆에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들어차 있다. 족히 몇 백 년은 묵은 나무들이다. 벚꽃 피는 계절이 되면 장관을 이룬다.

아직 벚꽃이 피기 전 겨울의 티를 벗어나지 못했을 때 스기하라 선생을 찾아갔다.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습도가 높은 동경의 여름은 악명이 높으나 겨울도 참, 뼛속까지 시려오는 듯 어슬어슬하게 춥다. 연구실에 들어가니 밖하고 온도 차가 별로 없었다. 살펴보니 다른 곳에서는 나오는 난방을 일부러 꺼두었다. 선생은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더니 차를 넣었다. 뜨거운 차를 한 잔씩 홀짝홀짝 마시며 추위를 녹였다. 하지만 한국인인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색은 할 수 없었어도 추워서 덜덜 떨었다. 나는 이것을 일본인의 투철한 공공의식의 예로 자주 거론해왔다.

선생은 자주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주장하고 그 이래 일본 외교정책의 큰 모토가 되어온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과의 교류를 활발히 하여 아시아 제국과의 선린우호 관계를 설정하는 일에 최선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 논의에 끌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중할 때가 많았다. 선생은 몸으로 이를 실천했다. 히토쯔바시 대학에 한국법 과목을 넣었고, 국립대학으로서는 한국인 교수를 처음 채용했다. 이것이 80년대의 일이니, 지금으로서는 새삼스러울 것 없어도 당시에는 아주 파격이었다. 일본의 헌법학자들을 이끌고 한국을 찾아와 세미나를 열어 교류의 물꼬를 넓혔다. 중국으로도 갔다. 그 분이 키운 중국인 제자들은 이제 중국 공법학계의 중진이 되었다. 유독 아직까지도 히토쯔바시 대학이 중국과의 교류에 아주 적극적이다.

선생은 은퇴하고 나서도 지역사회의 문제를 법적으로 체계화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6년도엔가 학생들을 이끌고 일본에 가는 길에 선생을 뵈었더니 거주하는 지역센터에 정기적으로 나가 주민들에게 헌법교육을 한다고 웃으며 말하였다. "그런데 신(申)상! 요즘 오른쪽 어깨가 잘 말을 듣지 않아요. 너무 많이 사용해서이겠지요?"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서늘해졌다. 평생을 외길로 학문 연마에, 그리고 올바른 일본의 상을 정립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노학자의 유머 뒤에 숨긴 그 처절한 자기 소진의 결과를 봤기 때문이다.

2008년 제헌절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하나로 국회의 도움을 받아 대대적으로 '아시아헌법포럼'을 창설하였을 때다. 이것은 다분히 스기하라 선생의 의지가 큰 동인으로 작용해서 열린 것이다. 선생을 일본 측 기조연설자로 모시려 했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오실 수 없다는 전갈을 받았다.

벚꽃 피는 아름다운 계절이 돌아온다. 활짝 핀 벚꽃처럼 아름다운 열정으로 평생을 살아온 스기하라 선생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선생의 제자로서 또 한국 헌법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