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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부러진 화살'이 겨냥한 것

신평 교수(경북대 로스쿨)

지금 묵직한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처마 밑 고드름이 계속 불어나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느끼듯 말이다. 고드름은 떨어져 차가운 흙바닥에 흐트러진다.

소위 '석궁사건'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한 영화 '부러진 화살'이 사건 발생 후 몇 년이 지난 지금 뜨거운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인 김명호(전 성균관대) 교수의 심정을 비슷한 처지에 빠졌던 경험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잘 이해하는 편이고, 또 그와 약간의 개인적 인연을 갖고 있기도 하다. 피해자인 법관은 평소 마음으로 존경하며, 그의 인격과 덕망을 흠모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슬픈 눈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 사건 그리고 영화가 갖고 있는 사회적 함의를 한번 헤쳐 보았으면 한다.

김 교수의 재임용탈락에서 드러난 것을 축약해 말하자면,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때때로 과시하는 폭력적 야만성, 더구나 약한 개인을 상대로 벌이는 거대한 조직을 빌린 폭력행사이다. 김 교수의 재임용탈락은 무엇보다 그가 입학시험문제의 출제오류를 지적한 때문이다. 다른 교수들은 감정을 품고 그를 몰아붙였다. 사람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나, 대학사회의 파벌싸움은 꼭 닭싸움처럼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위에 선 닭은 상대의 뇌수가 드러나도 멈추지 않는다. 그 잔인성은 보는 사람이 몸서리칠 정도이다. '상아탑'이라는 따위의 미사여구를 빼고, 적나라한 모습을 한번 들여다보라. 교수들은 아마 자신들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잘 모를 것이다. 그래서 미련하기 짝이 없는 닭싸움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한 번 빼어든 칼을 멈추지 않고 김 교수를 난도질해 들어갔다. 김 교수가 교육자적 자질이 현저히 부족해 그랬을 뿐이지 입시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성도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그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김 교수의 인생은 아주 절단이 나버렸다. 비슷한 일을 겪었던 내 경우를 참고로 말해보자. 내가 법관재임용에서 탈락했을 때 일이다. 대법원에서는 법조출입기자들을 상대로, 있지도 않은 사실을 날조해가며 내 사생활이 문란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라고 공작을 펼쳤다. 이를 전해 들으며, 아이들 엄마는 한 때 죽음으로 억울함을 풀겠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참 아쉬운 일이다. 재판부가 대학사회 심한 파벌싸움의 곁 모습이라도 슬쩍 훔쳐볼 수 있었으면, 그리고 이런 일에 항용 따르기 마련인 조직의 변명은 대체로 문제의 본질과 하등 관계없다는 점을 약간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결론은 다르게 났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법원이 집단 린치를 가한 교수들 손을 들어줌으로써 실낱같이 희미하게 남아있던 김 교수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아, 언제쯤 한국의 기득권세력은 좀 점잖아질까? 그래서 한 포기 풀같이 연약한 존재라도 바람에 꺾이지 않고, 무서운 발굽에 밟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까.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에 공정성의 기준이 들어서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를 희구한다. 바로 이것이 '부러진 화살'이 겨냥하며 날아간 과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