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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9) 다산의 편지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어느 날 인사동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고 있는데, 잘 아는 중간상이 무슨 첩을 가지고 간다. "아저씨 그것이 무엇이요"하고 물으니 "별 것 아닙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보고 싶어 "어디 한 번 봅시다"하니 "별것 아닌데…" 하며 보여준다.



1816년 강진 유배시절 다산이 친한 이에게 보낸 편지.

조선 후기에 여러 명인들의 편지를 모아 놓은 간찰첩인데, 그 중 한 통의 편지가 눈에 쏙 들어온다. 간지(干支)는 있지만 이름을 쓰지 않은 편지인데 일견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의 글씨로 여겨졌다. (귀양지에 있을 때는 거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다산도 그의 필치와 유사한 글씨가 종종 있기에 내용의 상관관계를 살펴 보아야 다산의 편지인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치 빠른 아저씨라 값나가는 물건인 줄 짐작하고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길거리에서 서둘러 가격을 흥정하여 적당히 샀다. 싸게 샀다고 생각하고 샀지만 만약 다산 의 편지가 아니라면 산 값도 나오지 않는 그러한 첩이었다. 서둘러 서점으로 돌아와 내용을 훑어보니, 내용과 간지 등이 다산의 편지가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용인즉 친한 이에게 보낸 강진(康津) 유배시절의 편지로 간지는 병자년(丙子年, 1816년)이었다.

이 해에 다산과 함께 흑산도(黑山島)에 유배 중이던 둘째 형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돌아가셨는데, 바로 형님이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쓴 편지였다. 1801년 신유사옥으로 셋째 형 정약종(丁若鍾 1760-1801)은 죽고, 둘째형과 같이 유배를 당해 다산은 강진에, 형 정약전은 흑산도에 있었다. 이 편지는 형제간의 애틋한 사연도 사연이지만 조문을 갈 처지가 아닌 유배죄인으로 겪는 고통과 상심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쓸쓸하다.

다산은 1910년대에 위암 장지연(韋菴 張志淵 1864-1921)이 매일신보에 연재하던 『일사유사(逸士遺事)』에 실릴 만큼 알려져 있던 인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목민심서(牧民心書)』의 저자로 뿐만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여러 모습으로 학계에 알려져, 그의 자필 저서라든가 그의 친필 글씨는 매우 인기가 높다. 글씨하면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인데 큰 글씨야 추사를 따를 수 없겠지만, 편지 글씨는 추사에 버금간다 하겠다. 30여년전만해도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이나 박수근(朴壽根 1914-1965) 같은 작가가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1892-1979)나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 1913-2001)과 같은 동양화 작가보다 훨씬 인기가 떨어지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

예술품은 이와 같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수시로 그 가치가 변하게 마련인데, 이를 잘 활용한 수집가나 상인은 여유가 있고, 이를 늦게 알면 다른 이보다 손, 발이 수고롭게 된다. 그 편지를 지금도 갖고 있었으면 좋으련만, 지금은 누구의 손에 보관되어 있는지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질 않으나 다시 한 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