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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말

뮤지컬 '렌트'를 보고

조대환 변호사

'No Day, But Today'(오늘이어야만 해)하면 떠오르는 뮤지컬, '렌트'(Rent)는 미국 유학시절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다른 뮤지컬에 정신이 팔려 극장 앞까지 갔다 보지 못해 안타까워했던 공연이다. 반갑게도 이른 추석으로 여유로웠던 9월의 중순 충무아트홀에서 그 감동을 접하게 되었다.

내레이터인 '마크'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한 가수 브라이언, 뮤지컬계 스타 강태을('로저' 역)과 윤공주('미미' 역)가 출연했고, 박칼린이 연출을 맡았다. 렌트는 푸치니의 3대 오페라 중 하나인 '라보엠'(La Boheme)을 원작으로 그 배경이나 인물들이 서로 종종 비교되곤 한다. 렌트는 1800년대 라보엠 당시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겪는 배고픔의 아픔을 1900년대 말 뉴욕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맞닥뜨린 에이즈공포와 동성애 등 현실의 고뇌로 그려내고, 락, 발라드, R&B, 탱고, 가스펠 등 다양한 음악장르를 오페라테형식으로 재탄생시켰다.

그 생애를 바쳐 만들고도 첫공연 조차 보지 못하고 30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천재작곡가 조나단 라슨(Jonathan Larson)의 이 작품은 한국 정서와 그다지 맞지 않을 것 같은 소재지만 2000년 초연 이후 계속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렌트는 다른 작품에 비해 스토리의 전개가 여러 청춘들의 삶에 얽힌 복잡 난해한 얘기라 미리 그 줄거리를 알고 가지 않으면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이야기는 현실이 두려워 늘 카메라 뒤에 숨어 사는 가난한 영화제작자 마크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마크의 친구 음악가 로저는 같이 에이즈를 앓고 있는 미미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표현을 못하고, 미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에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려 한다. 마크의 옛예인 모린은 동성애자인 조앤과 사랑을 나누는데, 그들의 자유분방한 대사와 춤은 다소 침울할 수 있는 극의 전개를 밝게 해주었다. 또 다른 마크의 친구 콜린은 거리에서 강도에게 뭇매를 당하지만 호모인 엔젤의 도움을 받고 서로 사랑을 나눈다.

에이즈환자나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근래 화두다. 우리나라도 에이즈 예방과 감염자 보호관리를 위해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이 제정되어 감염자에 대한 치료, 신고의무, 에이즈 전파에 따른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일상 질병과 달리 에이즈 같은 특수한 질병의 경우 그 전염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이 문제될 수도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선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등 성적 소수자에 대한 동등한 사회보장과 인권보호의 논의가 뜨거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가난한 예술인들을 쫓으려 아파트를 철거하려는 땅주인 베니에 반대하는 모린의 퍼포먼스 '오버 더 문'(Over The Moon)이 있던 밤, 로저와 미미는 라이브 카페에서 사랑을 확인하지만, 베니와 미미의 관계를 의심하면서, 로저는 미미와 헤어진다. 로저는 1년만에 옛아파트로 돌아오고, 이 때 그가 떠난 뒤 길거리를 헤매다 쓰러진 미미가 모린과 친구들에 업혀 들어오자, 미미를 그리며 죽기전 의미있는 곡을 쓰고 싶어하는 마음을 '원송글로리'(One Song Glory)로 담아낸다. 미미는 살아나 꿈속에서 희망을 안겨준 엔젤을 얘기하고, 친구들은 함께 살아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노래한다. 현실의 어려움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로저와 달리 엔젤은 에이즈환자임에도 사랑과 희망의 상징으로 콜린에게 거침없는 사랑을 표현하고, 낙천적으로 삶을 바라보며 자신의 행복을 나눈다.

출연진의 하모니가 돋보인 흑인영가풍의 합창 '사랑의 계절'(Seasons Of Love)은 렌트하면 생각나는 멋진 곡이다. 로저와 미미는 '오늘밖에 없어'(Another Day)로 죽음의 공포와 싸우면서도 오늘의 소중함을 노래한다. 다소 비정상적이고 터부시될 수 있는 소재를 가진 렌트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열정과 희망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현대인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