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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노벨상을 받은 유엔, 그 중심에 선 대한민국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중에서)"

2001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노벨위원회는 유엔과 함께 유엔의 사무총장 코피아난(Kofi Annan)에게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유엔이 그 동안 세계평화와 안전을 위해 기울인 공헌을 인정한 것이었다. 당시 코피아난 사무총장 개인 이외에 국제기구로서 '유엔 자체(United Nations as such)'가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어 더욱 의미가 깊었다.

그런데, 당시 과연 누가 유엔의 대표로 수상식에 참석해서 상을 받아야 하는지를 두고 유엔 전체가 고민에 빠졌다. 유엔은 주요기관으로서 유엔총회, 안전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 사무국 등을 두고 있지만, 유엔헌장 등 어디를 살펴보아도 유엔 전체의 대표를 정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엔 자체'를 수상자로 선정했기 때문에, 그 범위에는 유엔 회원국은 물론 사무국 및 관련 산하기구들이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물론 수상식에는 유엔의 6대 기관의 장,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아동기금(UNICEF), 평화유지활동(PKO) 대표들이 참석하게 되겠지만, 문제는 누가 유엔 전체를 대표하여 코피아난과 함께 상을 받느냐는 것이었다.

유엔본부에서는 내부의 법률적 검토를 거쳐 총회 의장이 유엔을 대표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189개 전 회원국을 대표하는 유엔의 최고기관으로서 대표성이 있어 총회 의장이 이를 수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영광스럽게도, 당시 총회 의장은 우리나라의 한승수 전 총리였다. 2000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수상에 이어 한국인이 연속으로 영광스런 노벨평화상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한승수 총회 의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총회 의장이 되었으므로, 대한민국이 유엔을 대표하여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는 볼 수 없을까?

한승수 전 총리는 우리나라 출신의 총회 의장이라는 점에서 각별하지만 그에 앞서 유엔 역사상으로도 특별한 인물이다. 2001년, 새로운 한 세기를 시작하는 유엔총회의 의장을 맡아, 9월 11일 그의 임기를 시작했다. 그 날이 바로 같은 뉴욕에서 '9.11. 테러'가 있었던 날인 것이다. 뉴욕에 위치한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대한 알카에다의 자살 비행기 테러는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유엔본부 등 주요 시설에 대한 테러 공포로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맨해튼의 모든 시설이 패닉 상태였다. 그러한 위협 속에서도 한승수 총회 의장은 유엔총회를 개최하여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강하게 규탄하고 테러리즘을 척결하기 위해 국제협력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세계를 놀라게 한 위기 극복의 리더십이었다. 테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을 촉구하고 유엔이 그 중심적 역할을 해 나가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이다. 1991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으로 회원국이 된지 10년 만에 대한민국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유엔총회 의장은 어떤 역할을 자리일까? 우선 유엔 192개 회원국을 대표하여 총회장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주요 유엔총회 회의가 진행될 경우, 유엔총회 의장이 연단의 가운데에 앉아 회의를 주재하게 되는 것이다. 총회 의장은 임기가 1년으로 매년 6월쯤 그 해 9월부터 다음해까지 유엔총회를 이끌어갈 유엔총회의 의장을 선출하게 된다. 관행적으로 안보리 5개의 상임이사국에서는 유엔 총회 의장을 맡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유엔의 대표를 뽑는 과정이 우리에게 생소하다. 유엔총회 등 국제기구의 상당수 투표 자체가 지역그룹(regional bloc)의 사전 조율에 의하여 정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엔총회 의장의 경우에도 관행적으로 지역그룹 순환제를 유지하고 있다. 지역 그룹에서 개인을 후보로 선정하면 유엔총회에서 전체 회원국들이 이를 선출하는 모양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패턴은 1963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데, 5개의 지역 그룹인 라틴아메리카와 캐리비안 국가, 아프리카 국가, 서부유럽 및 기타 국가, 아시아 국가, 동유럽 국가가 순서대로 총회 의장을 맡고 있는 것이다.

2010년 6월 11일, 유엔총회에서 새로운 회기를 이끌어 갈 총회 의장을 뽑는 절차를 진행하였다. 이번에는 서구그룹에서 의장을 맡을 순번이었는데, 스위스 외무장관 출신의 조셉 데이스(Joseph Deiss)가 단독 후보로 추천되어 선출되었다. 전임자는 리비아 출신의 알리 트레키(Ali Treki)로 카다피의 측근이었다고 한다. 선출 이전에 후보의 입장 발표나 투표 등의 절차도 없었다. 사회를 보던 총회 부의장이 후보의 약력을 소개하는 것이 전부였다. 총회장을 찾아 의장의 탄생을 지켜보던 필자에게는 다소 싱거운 절차였지만, 유엔이라는 거대한 국제기구가 지역그룹 등으로 물밑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사전에 중요한 타협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유엔에서 지역그룹별로 다양한 논의가 결정되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의 형편은 어떠할까? 서구그룹, 아프리카, 동유럽, 라틴아메리카 등과 달리 우리나라가 속한 아시아 그룹은 국가 간의 격차와 지역 간의 이해관계, 문화적 차이가 매우 크다. 60개가 넘는 유엔 회원국들이 속해 있지만 공통된 이해를 갖고 있지 않다. 서아시아의 아랍권 국가들과 인도, 파키스탄 등 인도양 연안 국가, 아세안이라 불리는 동남아시아 국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힘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 일본은 동아시아의 이웃 국가이지만 유엔에서 중요한 선거 등의 이슈로 맞부딪칠 때는 오히려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아시아 국가로서 우리는 지역 그룹의 지지를 업고 쉽게 무슨 일을 추진한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어느 국가보다 더욱 많은 노력과 대비가 필요하다. 냉철한 분석과 도전이 필수적이다. 외교적 역량을 축적하고 장기적인 준비를 거쳐야만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 우리의 과제이자 도전이었다.
한승수 총회 의장은 노벨상 수상 이후 오슬로에서 코피아난 사무총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가진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엔이 6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류를 향해 우직한 발걸음을 옮겨온 것처럼, 우리 법조계도 국민을 향해 진정성으로 다가가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지혜를 발휘하길 기대해 본다.

"그 동안 다양한 유엔의 산하 기구들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유엔 자체는 창설된 지 55년 만에 처음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아마도 유엔은 그 본질상 업적이 축적되고 시간을 두고 드러나게 되는 기구인 것 같습니다. 유엔에서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는 심어놓은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기 전까지 종종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유엔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 6월 반기문 사무총장의 재선 결정에 전 세계가 만장일치의 박수를 보냈다. 앞으로 5년 6개월 기간 동안 그의 활약에 기대를 더하는 대목이다. 유엔의 정규 분담금 2.26%, 5천만 달러 정도를 담당하여 세계 11위권의 재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유엔 시스템에 합류하여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며, 세계를 이끄는 미래 지향적 리더십으로 나아가야 한다. 쉽지 않은 도전이겠지만,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함께 이뤄낸 우리의 저력에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뉴욕 유엔본부를 바라보며 백범의 '나의 소원'을 다시금 되뇌어본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