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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버나드 메이도프를 통해 금융사건 들여다보기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뉴욕에서 만난 투자은행의 임원이 놀란 눈을 하고 필자에게 답을 구하고 있었다. 국내의 최근 저축은행 관련 뉴스를 어디선가 본 모양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스로 인한 부실, 대주주 및 경영진의 비리, 금융감독기관의 부패, 검찰의 수사 등을 이야기해 주려다 보니 답답함이 밀려온다. "도대체 왜 그런 금융사건이 일어난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과연, 자본주의의 심장인 금융시장을 둘러싸고 유사한 금융사고와 사건들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의 뇌리에는 2009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버나드 메이도프의 금융사기사건이 떠올랐다. 2년여전 뉴욕에 처음 부임했을 때 월스트리트에서도 같은 질문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스닥 증권거래소 회장을 역임할만큼 영향력이 컸던 버나드 메이도프가 벌인 금융사기 사건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이었다. 연방양형기준법상 최고 형량인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점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여기서 버나드 메이도프 사건을 중심으로 되풀이되는 대형 금융사건의 공통점을 짚어보고('The Wizard of Lies-Bernie Madoff and the Death of Trust", Diana B. Henriques 저, 2011. 4. 발간 참조), 금융감독 시스템에서의 법률가들의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대형 금융사건의 경우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거액의 피해를 남기지만 범죄의 구조는 생각보다 간단한 경우가 많다. 메이도프 사건의 경우 피해금액이 500억 달러에 이르고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하여 수많은 개인 투자자와 유명 투자자문사와 해외은행이 피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수법은 다단계 금융 피라미드에 가까웠다. 증권회사를 차려 일반 투자자들을 모으고 나중에 투자한 사람들의 자금으로 수익금을 지급한다. 실제로 그 어떤 곳에도 투자하지 않지만 계속해서 신규 투자자들이 들어와 시장 변동에 관계없이 연 10퍼센트 대의 수익률을 거둔다. 특히 환매를 원하는 투자자들에게는 즉시 돈을 지급하면서 신뢰를 쌓는다. 투자자들은 점점 늘어났고 기관투자자들까지 가세했다. 사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없었다면 메이도프가 죽은 후에나 범죄가 밝혀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이러한 금융사기는 이미 1920년대 '폰지 사기'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큰 사회적 문제가 된 바 있었다.

'폰지 사기'는 전형적인 허황된 금융범죄 유형이지만, 생각해 보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우리의 저축은행사태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경우, 미국 부동산 시장의 계속적 성장이라는 전제 하에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부실이 초래된 것이었다. 저축은행 사태도 무분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부실화된 일부 저축은행을 인수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게 하고 일정 한도로 원금까지 보장하면서 일반인들의 저축을 끌어들여 돌려막기를 했다는 점에서 범죄 여부를 떠나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둘째, 대형 금융사건의 근간에는 인간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의 극단이 도사리고 있었다. 메이도프는 나스닥 회장을 역임하고 다수의 비영리기관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박애주의자로 행세했지만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더 과감하게 규모를 확대했다. 더구나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회사 임원들에게 3억 달러를 이체하면서 주변을 챙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영업정지 대상인 일부 저축은행의 임직원, 가족 등이 영업정지 전날 마감시간 이후 3천여건, 1천억 원이 넘는 예금을 인출한 것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더구나 메이도프는 운영하던 증권회사의 준법감시인을 자신의 가족들로 채우는 과감성을 보였다. 준법감시인이 회사의 트레이딩 규정과 포트폴리오 운용 과정을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보고하도록 한 규정을 갖고 있었지만, 누구인지는 관여하지 않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셋째, 금융감독 시스템의 작동 실패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2009년 10월, 증권거래위원회(SEC) 감사실장은 10개월에 걸친 조사를 거쳐 메이도프 사건이 왜 밝혀지지 않았는지에 대하여 무려 450여쪽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내부 직원들이 월가의 거물에 대하여 적극적인 감독에 나서지 못한 이유를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고위급과 접촉이 잦고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한 메이도프에 대해 감독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웠다는 등의 원인을 들고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지난 9년 동안 메이도프 관련 제보가 이미 수차례 SEC에 접수되어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기술적 법률 위반만을 확인하고 금융사기에 대한 본격적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감독기관과의 유착이 의심스러운 대목이고, 그렇지 않다면 감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대형 금융사건들의 본질과 구조는 국경을 넘어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적 비리와 부정과 함께 금융감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수많은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를 남긴다는 점에서 인간의 탐욕과 본성의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법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안이한 믿음이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대체로 유사한 공식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여기서 금융시장을 관통하는 '경제정의'를 지켜내는 파수꾼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액의 자금이 다양한 금융기법을 통해 국경도 없이 거래되는 현실 속에서 금융가들의 윤리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Theory of Moral Sentiments)'이란 저서를 통해 근대 경제학의 기본이 되는 사회철학에 관한 이론을 정립했다. 그는 정의를 세우는 것이 사회의 평화와 자유로운 교역에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100미터 달리기 경기에서 선수들이 넘지 말아야 할 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규제'에 해당하는데 이는 올바른 방향과 함께 명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지키지 않는 반칙과 비리, 부패에 대하여 단호한 대처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국가적 과제를 담당하고 경제정의를 지켜낼 확고한 사령탑과 철학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시장에서 금융 규범을 지키고 원칙을 존중하는 관행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탐욕은 법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자기 합리화를 통해 변명을 확대재생산하고 세력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여기에 정의감을 갖춘 법률가들의 역할이 있다. 미국 SEC에 수많은 변호사들이 증권법규를 시장에 적용하고 감시하는 업무를 맡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준사법기능의 일부를 담당하는 만큼 전문성을 갖춘 법률가들의 활용은 필수적이다. 이는 감독 시스템에 대한 시장의 신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SEC 내부에 독립적 감사기구(inspector general)를 운영하며 투명성과 청렴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부정과 비리에 대한 예방과 조사뿐만 아니라 중요 이슈들의 조사 결과는 의회와 위원회에 보고하는 역할을 맡는다. 메이도프 사건의 원인에 대한 보고서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의 저자 토마스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즈 칼럼을 통해 메이도프 사건을 가리켜 "폰지 사기는 '합법적'인 월스트리트의 사기보다 조금 더 '불법적'이었을 뿐이다"라고 꼬집었다. 오늘날 우리의 금융시장이 얼마나 인간의 탐욕으로 위태로운지 지적한 것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을 지켜내고 일반 투자자들을 보호함으로써 경제정의를 세우는 일은 고된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 법률가들의 분발과 창의적 기여를 기대해 본다.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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