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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이야기

[한자이야기] 후(後)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

후(後)는 "뒤, 늦다"의 뜻으로 쓰입니다. 글자의 모습이 다소 복잡합니다. "가다" 뜻인 두인변에 작을 요()에 뒤처질 치()가 합해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가긴 가는 데 조금씩 조금씩 뒤처져 가니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뒤" 또는 "늦다"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늦거나 뒤처지는 일은 대부분 즐거운 일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모두 남보다 앞 서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은 경쟁 사회입니다. 성적도 좋아야 하고, 회사생활에도 앞서야 합니다. 피아노도, 수영도, 달리기도 모두 이겨야 합니다. 공부도 예능도 체육까지도 말입니다. 그래서 뛰어야 하고 빨리빨리 해야 합니다. 그러나, 경쟁은 경쟁만 가져올 뿐입니다. 뒤돌아 보는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나의 농막(農幕) 입구에 오동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몇십 년 묵은 것이라 둘레가 한 아름이 넘습니다. 봉(鳳)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 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 오동나무는 봄이 되어 다른 나무들이 움이 트고 너울거려도 꿈쩍을 하지 않습니다. 마치 마른 나무처럼 말입니다. 그러다가 5월에 접어 들면 조금씩 움이 트기 시작하다가 7·8월이 되면 그 잎이 활짝 피어 납니다. 이 때가 되면 다른 나무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넓고 커다란 잎이 너풀거립니다. 이어 피어나는 풍성한 자줏빛의 아름다운 꽃과 그 향은 정말 장관입니다. 뒤에 피어나도 다른 나무가 도저히 따르지 못하는 앞서는 모습을 가진 것이 오동입니다. 그러기 위해 준비기간이 그토록 길었나 봅니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 라는 말입니다. 여름철에는 소나무나 낙엽수나 전혀 색깔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가을이 짙어지고 서리가 내리면 달라집니다. 추풍낙엽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반 낙엽수들은 서리 한두 번에 앙상한 가지만 남고 맙니다. 그러나 소나무와 잣나무는 서리가 내리고 비바람이 쳐도 꿋꿋한 자태에 변함이 없습니다. 세한연후(歲寒然後)에 지송백지후조(知松柏之後彫)의 뜻이 그것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의 주제입니다. 공자님 말씀입니다. 이 글에 후(後)가 두 번이나 나옵니다. 이를 보면 후(後)라고 모두 좋지 않은 것은 아닌 듯합니다. 후사(後嗣), 후계자(後繼者)가 늠름해야 후견인(後見人)노릇함에도 신바람이 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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