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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과 뉴욕법조계] 유엔에서 바라보는 이집트 카이로

김형준 검사(주 유엔 대표부 법무협력관)

"이번 시위는 이집트 국민들의 거대한 불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야 하고 빠를수록 좋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런던에서의 인터뷰는 세계를 돌아 어느새 뉴욕을 흔들고 있었다. 권좌에 있던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적인 권력 이양을 촉구하는 발언은 외교가를 놀라게 했다. 당시로서는 국제사회에 새로운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2월 초순, 이집트에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시민들의 시위가 계속되는 와중이었다.

이집트 정부는 당장 즉각적으로 반 총장의 발언에 불만을 제기하고 나섰다. 유엔 주재 중국 대사도 이집트의 정치 위기는 자국민이 해결해야 하는 내부 문제라고 반 총장의 발언을 비난하기에 이른다. 러시아도 비판의 수위를 높이기는 마찬가지. 그런데 반 총장의 이집트 사태에 대한 언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베를린을 방문 중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무바라크 대통령이 유엔의 거듭된 개혁 요구를 무시해 왔다"면서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이집트의 국민, 특히 시위에 나선 젊은이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목소리를 반영한 발언이었다. 유엔 주재 이집트대표부의 니할 사드 대변인이 지적한 것처럼 "이집트를 비난하는 어떤 회원국의 발언보다도 수위가 높았던 것"으로 평가되었다.

반 총장의 국제사회를 향한 단호하고 분명한 어조는 중동 지역에서 역사의 새로운 반향을 보여주었다. 사무총장 연임을 앞두고 리더십에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음이 감지된다. 우리 국민들의 더욱 큰 관심과 응원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유엔의 역사상, 이집트와 유엔 사무총장의 인연은 만만치가 않다. 이집트 출신의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부트로스가 2번 쓰인 것은 오타가 아니다)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사무총장을 맡았지만, 안보리에서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연임이 좌절되었다. 현재까지 총 7명의 사무총장 중 5년 단임으로 임기를 마친 것은 그가 유일하다(7대 반기문 사무총장은 금년 내 연임 결정을 앞두고 있다). 그는 재선에 나가겠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했지만, 미국의 주요 외교관 및 정계 인사들과의 대립으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미국과 소말리아 내전과 르완다 대량학살 등의 대응을 거치면서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올브라이트 미국 유엔대사와의 악연은 상황을 좋지 않게 만들었다. 그녀가 클린턴 정부에서 사무총장 연임을 저지하는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이다.

여기서 유엔 사무총장 선임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두 가지 진실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안보리 상임이사국 거부권의 막대한 영향력이다. 부트로스갈리 사무총장의 재임은 당초 프랑스, 러시아, 독일, 중국 등 10개국이 공동제안하는 형태로 안보리에 상정되었다. 당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을 맡고 있던 우리나라도 여기에 지지를 보냈다.

결국 최초 미국을 제외한 14개국이 연임을 지지하였음에도 결과는 거부권을 가진 미국의 반대로 다른 후보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찬성 14표, 반대 1표였지만 그 반대 1표의 힘은 컸다. 마이클 시핸 전 유엔 사무차장보는 이런 일을 주도한 올브라이트에게 존경심을 표하며 "그녀가 없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녀는 온갖 압력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올바른 일을 행했습니다"고 미국측 입장을 옹호한다. 그러나 회원국이 사무총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퇴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더군다나 클린턴의 재선을 앞둔 당시 민주당 정부가 정치적 골칫거리를 없앤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은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유엔 리포트 - 내부에서 바라본 유엔 이야기」, 린다파술로 저, 김형준 외 5인 옮김, 21세기북스 참조).

또 하나, 사무총장 선임과정은 철저하게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국가간 딜이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부트로스갈리를 대신하는 아프리카 후보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결국 코피아난 사무총장이 선출되었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는 이를 지지하는 대가로 미국측에 평화유지 담당 사무차장직을 자국이 맡도록 요청했다고 알려졌다. 1996년 봄 미국도 클린턴 대통령에게 사무총장의 연임을 막고 코피아난을 포함한 아프리카 출신의 3명의 후보를 제안하는 보고를 하였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유엔을 둘러싼 192개 회원국들의 치열한 외교전쟁의 단면일 것이다.

"유엔만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믿어요" <인터프리터> 영화에서 유엔의 통역 요원으로 열연한 니콜 키드먼의 대사다. 그녀의 나지막한 되뇌임처럼 유엔이 국제사회의 현실을 넘어 인류의 미래를 위한 희망으로 역할해 주기를 바란다. 그 중심에 대한민국도 함께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2011년 반기문 사무총장의 연임을 통해 우리의 이러한 소망이 더욱 빛날 것으로 믿는다.

김형준 검사 hjkim.un@gmail.com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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