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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이야기

[한자이야기] 향(香)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

향(香)은 "향기 또는 향기로움"을 뜻하는 한자입니다. 글자의 모양이 벼 화(禾)에 말씀 왈(曰)이 아랫 쪽에 붙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한동안 이 "曰"이 "달다"라는 뜻의 감(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갑골문의 발굴로 "입(口)" 또는 음식을 끓이는 "솥(臼)"을 본 뜬 것이라고 수정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 글자는 벼와 같은 알곡과 관련하여 생긴 글자입니다. 알곡인 쌀을 솥에 넣고 끓이면 구수한 냄새가 납니다. 이것이 바로 향(香)의 본 뜻인가 합니다.

이 향(香)은 후각(嗅覺)적인 말입니다. 코를 통하여 냄새를 맡을 수 있음은 큰 복입니다. 은은한 난초(蘭草)의 향기, 한여름의 아카시아, 또 가을이 오면 탐스런 국향(菊香)이 우리의 코를 절기에 맞춰 반깁니다. 옛 사람들은 "조그마한 못에(十步之澤) 반드시 향초가 있고(必有香草), 열집 남짓한 고을엔(十室之邑) 반드시 충사(忠士)가 있네(必有忠士)"라고 하여 작은 못에 난 풀의 향기로움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벼가 익는 팔월에는 벼꽃이 하얗게 핍니다. 그 즈음 논들을 걸으면 구수한 벼화의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농부들은 이 냄새를 맡으며 풍년을 구가합니다.

오래 전 얘기입니다. 추석을 앞 둔 들판은 평화롭고 벼꽃 냄새로 감미로왔습니다. 달리 소득이 없는 농군들은 논들을 보며 상상의 날개를 폅니다. 몇 가마니는 장려쌀 갚고 몇 가마니는 농비로 충당하고 몇 가마니는 아이들 학비로 써야지 하며 말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천재(天災)가 들었습니다. 그것도 추석날 아침에 말입니다. 며칠 전부터 내리던 장마비가 태풍과 함께 쏟아졌습니다. 천지가 물바다가 되고 논은 토사에 밀려 황무지로 되어 버렸습니다. 쌀 두 가마니는 커녕 종자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사라호 태풍 때의 기억입니다. 향기가 절망으로 바뀔 수 있음도 이 때 보았습니다.

많은 향기 중에서 원초적 향내가 무얼까 궁금했습니다. 이 향(香)의 어원을 살피면서 밥지을 때 나는 그 구수한 냄새가 바로 향기의 원조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난(蘭)을 향조(香祖)라 한 것도 이유가 있을 터이지만, 향료(香料), 향화(香花), 향합(香盒), 향옥(香玉), 향초(香草) 모두가 벼와 관계되어 나온 말들이어서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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